[언론보도] 빛과 전자가 만나 광정보통신 세계 연다(과학동아 2009. 8월호)

2009-08-04l Hit 14634


액티브 플라즈모닉스 응용시스템연구단

빛과 전자가 만나
광정보통신 세계 연다


프랑스의 샤르트르 대성당, 독일의 쾰른 대성당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으로 유명하다. 창문이나 천장에 쓰인 스테인드글라스가 다양한 색으로 빛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빛을 받아 여러 가지 색을 내는 이유는 유리 안에 섞여 있는 나노미터(nm) 크기의 금속 입자가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하거나 산란시키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특정 진동수의 빛은 불순물을 만나도 산란되지 않고 금속 표면을 따라 움직인다. 나노미터 크기의 불순물(금, 은)을 포함한 금속에 500~600nm(나노미터, 1nm=10˗9m)의 가시광선이나, 광통신에 쓰이는 파장(1500nm)의 적외선을 쪼이면 금속 표면의 전자와 빛이 같은 진동수로 진동하면서 금속 표면을 따라 이동하는 ‘표면 플라즈몬파(이하 플라즈몬파)’가 나타난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색을 내는 이유는표면에서 플라즈몬파가 공명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이병호 교수가 이끄는 액티브 플라즈모닉스 응용시스템연구단은 플라즈몬파를 이용해 광전자 집적회로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플라즈몬파를 이용해 처리속도가 현재보다 1000배가량 빠른 반도체나 빛을 이용해 데이터를 저장하는 광정보 저장장치도 만들 수 있다.

금속 표면 타고 움직이는 플라즈몬파
빛은 진공이나 공기 중에서 전기장과 자기장이 수직을 이루며 진동해 나가는 전자기파다. 빛이 금속 표면에 닿으면 금속 표면의 전자가 전기장에 끌리게 된다. 이때 금속에 특정 진동수의 빛을 쪼여주면 빛의 진동수가 전자의 진동수와 일치하게 돼 둘 사이에 공진현상이 생기고 빛이 전자의 진동과 함께 금속 표면을 타고 이동한다.
만약 빛이 전자보다 너무 빨리 진동하거나 느리게 진동할 경우에는 빛이 전자와 함께 금속 표면을 타고 이동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바다에서서핑보드로 파도타기를 할 때 파도의 진동에 맞춰 몸을 위아래로 함께 움직여야 물에 잠기지 않고 파도를 잘 탈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플라즈몬파는 1902년 처음 발견됐다. 많은 물리학자들이 이 기이한 현상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동안 나노미터 크기의 미세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이 현상을 관찰하기 어려웠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2000년대 초반 들어서 근접장주사현
미경처럼 나노미터 크기의 물질을 관찰할 수 있는 기기와 관련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며 플라즈몬파에 대한 연구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 교수는 “은이나 금과 같은 금속으로 격자가 반복되는 주기와 높이가 약 100nm인 구조(나노입자)를 만들어 얇은 금속 표면에 붙인 뒤 빛을 쬐면 플라즈몬파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형성된 플라즈몬파는 금속 표면을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원래 빛이 통과하지 못했던 작은 통로까지 지나갈 수 있다. 보통 빛은 파장의 절반보다 작은 크기의 통로는 통과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500nm 파장의 빛은 폭이 250nm 이하인 통로는 지나갈 수 없지만 500nm 파장의 빛을 쪼여 만든 플라즈몬파는 100nm 폭의 통로까지도 통과할수 있다.

빛의 움직임 생각대로 바꿔 광센서 만든다
재밌는 점은 플라즈몬파를 다시 빛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금속 표면을 따라 통로를 지나온 플라즈몬파는 나노입자를 만나면 일부는 흡수되고 일부는 산란되면서 다시 빛이 된다. 연구단은 이때 나노입자 사이의 간격을 조절하면 빛이 산란될 때 일어나는 간섭현상을 이용해 빛이 특정방향으로 진행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교수는 “나노입자 사이의 간격에 따라 플라즈몬파에서 전환된 빛이 직진하도록 만들거나 특정 방향으로 향하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금속표면에 있는 격자구조의 크기와 간격을 각각 다르게 하면 금속 표면에서 일정 거리(빛의 파장의 3배 정도)만큼 떨어진 위치에 빛을 모이게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빛을 한 점에 모으는 포커싱 기술은 광정보 저장장치에 사용할 수 있다. 광정보 저장장치는 특정 부분에 빛을 가해 자기장의 변화를 일으켜 정보를 저장하는 방식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연구단은 격자구조의 크기나 간격은 그대로 두고 흘리는 전류에 따라 격자 구조의 굴절률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 방법이 성공하면 빛이 진행하는 방향과 모이는 초점의 위치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어 금속 표면의 특정 범위에 생긴 변화를감지하는 센서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속 표면을 타고 흐르는 플라즈몬파는 금속에 이물질이 붙거나 금속 표면의 상태가 달라지는 변화가 생기면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어두운 곳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처럼 금속 표면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연구단은 금속판에 특정한 모양으로 홈(슬릿)을 파 원하는 위치에 플라즈몬파를 집중시키는방법도 개발했다. 금속판에 슬릿을 판 뒤 수직으로 빛을 쬐면 슬릿을 통과한 빛이 표면을 따라 진행하면서 플라즈몬파를 만든다. 그런데 슬릿의 모양을 조절하면 특정 부분에 플라즈몬파가 집중돼 전기장이 더 센 영역인 ‘핫스폿(hot spot)’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슬릿의 모양에 따라 핫스폿이 여러 군데 나타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이 교수는 “핫스폿을 이용하면 전기장 세기를 본래 빛의 100~1000배로 높일 수 있어 민감한 센서나 광정보 저장장치에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성능 1000배 높이는 비법
플라즈몬파는 반도체 성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주역’으로도 평가받는다. 현재 반도체칩 사이에서 신호를 전달할 때 쓰이는 전기신호 대신 플라즈몬파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금속선 대신 광신호를 전달하는 ‘광도파로’로 칩을 연결할 경우 빛의 속도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며 “반도체의 성능을 10~1000배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성능을 높이려면 저장용량을 높이는 동시에 신호처리속도를 끌어 올려야 한다. 그런데 현재 금속선에 의한 전기 신호처리방법은 한계에 이르고 있다. 반도체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시키거나 크기를 줄이기 위해 선폭을 줄이면 그만큼 저항도 커져 신호처리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은 광섬유를 이용한 광도파로를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광섬유의 크기가 문제였다. 광섬유는 트랜지스터와 같은 반도체소자보다도 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반도체소자 하나는 지름이 50~80nm인데, 광섬유의 지름은 약 250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로 5000배 이상 굵다. “이를 해결할 대안이 바로 플라즈몬파를 이용한 광도파로입니다. 플라즈몬파를 이용해 광신호를 전송할 경우 도선을 50nm 이하의 두께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교수는 “광섬유는 광신호를 전달하는 코어를 중심으로 주변에서 신호의 세기가 조금씩 작아지기 때문에 대용량의 정보를 전달하려면 큰부피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플라즈몬파는 광도파로의 중심부에 신호가 집중돼 신호의 세기가 강하고 중심에서 벗어나 주변부로 갈수록 신호의 세기가 급격히 작아지기 때문에 훨씬 얇은 광도파로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점도 있다. 플라즈몬파의 전달거리가 아직까지 수백μm에서 1mm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플라즈몬파의 신호 전달거리를 늘리는 일이 연구단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연구단에는 출퇴근 시간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대신 이 교수는 학생들에게 국제학회에 참가할 기회를 많이 준다. 학생들이 전 세계 관련 연구원들을 만난 뒤 경쟁의식을 느껴 스스로 연구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또한 이 교수는 3주마다 한 번씩 연구원이 쓴 논문이 인용된 현황을 조사해 연구단 홈페이지에 올린다. 학생들의 반응도 좋다. 연구단의 박사과정 조성우 씨는 “박사학위를 받기 이전에도 자기 논문이 인용되는 사례가 많다”며 “조사할 때마다 연구단의 논문이 평균 약 20편씩 인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덕분일까. 지난해 서울대 자체 조사결과에 따르면 연구단은 의대를 포함한 서울대 이공계 전체 학과에서 SCI논문을 3번째로 많이 내는 연구실로 선정됐다. 최근 3년간 64편의 논문을 내 평균 한 달에 2편꼴로 논문을 낸 셈이다. 이 교수는 “플라즈모닉스 분야의 중심에 우뚝 설 연구단을 지켜봐 달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광학회와 미국광학회 잇는 메신저
이 단장은 2002년 3차원 정보를 저장하는 홀로그래피 기술과 초고속 광통신 기술에 대한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수여하는 ‘젊은과학자상’을 받았다. 그는 2005년까지 회절현상을 이용한 홀로그램을 연구한 광학 전문가였는데, 플라즈몬파에 끌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플라즈몬파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시기는 2007년 창의연구단에 선정되면서부터 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플라즈모닉스는 국내에서 생소한 분야였죠.” 이 단장이 연구를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는 모험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플라즈몬파의 잠재성을 발견하자 주저하
지 않고 연구에 뛰어들었다. “아직까지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하지는 못했지만 광학기술 전문지인 ‘최신 양자 전자공학(Progress in Quantum Electronics)’으로부터 플라즈몬파를 이용해 빛을 모으는 ‘빔 포커싱’에 관한 초청 논문을 게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 학술지는 한 번에 4~5편의 검증된 논문만 싣기로 유명하다.

lbh_5.jpg
                       
                [단장 서울대 이병호 교수]
이 단장은 연구와 함께 학회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국내 연구자로는 처음으로 미국광학회의 이사직과 기획위원을 맡았다. 미국광학회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광학 분야 학회로 ‘옵틱스 익스프레스’와 ‘옵티컬 레터스’와 같은 광학 분야 전문지를 발간한다. 학술적으로 뛰어난 연구성과가 있어야 발언권도 얻을 수 있는 미국 학회에서 이단장이 기획위원을 맡은 것은 전 세계 연구자들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증거인 셈이다.
이 단장은 한국광학회의 편집이사와 한국 정보디스플레이학회의 기획이사도 맡고 있다. 그가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유는 최신 연구 분야일수록 외국과의 교류가 필요할 뿐 아니라 외국 학회에서 기획과 운영 방안을 배워 국내에 도입하기 위해서다. 이 단장은 “미국 학회활동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국내에서도 좋은 논문을 쓰고 좋은 학술대회를 개최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며 “국내 학회와 외국 학회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