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기고] 전기요금체계 개편이 절실하다 (서울신문, 2012.9.14.)
[김용권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2011년 9월 대규모 정전 위기를 겪으면서 전력에 관한 국민의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 전기를 값싸게 쓰는 것도 좋지만 안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 전기요금을 적절히 올려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전기요금 체계는 전반적으로 이상하다. 가정용 요금이 산업용보다 비싼 꼴이고, 또 살인적인 누진제를 가정용에 부과하고 있다. 가정에서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죄악시되고 있다.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전기·전자업체들이 삼성에 패배한 이유 중 하나로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이 일본에 비해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을 예로 들고 있다. 우리 산업용 전기가 싸도 너무 싸다는 얘기이다.
한국전력은 가정용 요금 체계를 변경하겠다고 발표했다. 6단계인 누진 단계를 3단계로 줄이고 최대 11배에 이르는 누진율을 3배 정도로 줄여서 다른 나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시행 시기가 언제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우리 전력 소비 행태도 특이해서 난방으로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겨울에도 소비전력 피크를 걱정할 정도인데, 누진제 개편 시행시기는 아직 언제인지 발표하지 않은 것이다.
시쳇말로 ‘3대 거짓말’이 있다. 노처녀가 결혼 안 하겠다, 노인이 죽어야겠다,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이를 ‘3대 참말’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통계를 보면 정말로 결혼을 안 하겠다는 노처녀들이 꽤 되는 것 같고, 자살하는 노인도 상당수 된다고 한다. 한전도 전기를 밑지고 팔고 있으니 3대 거짓말이 이제는 모두 참말이라고 해야 하겠다.
전기를 100원에 사서 90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고 있다는 게 한전의 주장이고, 실제 그렇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요금체계인데, 한전 마음대로 요금을 올려 받지도 못하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이 산업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에너지 복지 정책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론에 밀려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저가의 전기요금은 에너지 사용을 왜곡시키고 있다. 회사에서 좋은 성과를 얻으려면 공정한 평가와 보수체계가 있어야 하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잘 교육하려면 공정한 시험과 평가가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지난 10년간 경유, 등유, 도시가스 등 전기를 제외한 다른 에너지 가격이 2.5배 또는 1.7배 정도 올랐는데 전기요금은 1.2배 정도 오르는 데 그쳤다. 이러니 겨울에 난방을 할 때 기름보다 더 귀중한 전기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사용하기도 편하고 가격도 저렴하니 당연한 얘기이다. 그런데 국가적인 차원에 보면 영 이상한 얘기이다. 석탄이나 기름을 사용하여 비싸게 생산한 전기를 늘 유지·관리해야 하는 송·배전 시설을 이용, 수송해서 이를 난방에 사용하고 있다. 벤츠를 타고 우유 배달하는 꼴이고, 몸에 좋은 약수로 빨래하는 꼴이다.
저가의 전기요금 체계는 우리나라 전기산업 진흥에도 방해가 되고 있다. 전기산업계에서 에너지를 절약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다. 전기 절약 제품이 잘 팔리는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전기요금이 싼데 굳이 에너지를 절감하는 전기제품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초기 구입비용이 싸지 않으면 굳이 전기를 아끼는 제품을 비교해서 살 이유가 없다. 이것은 가솔린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나니 소비자가 자동차 연비를 따지기 시작했고, 연비가 좋은 차나 하이브리드카 등을 구입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과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현재는 저가의 전기요금, 가정용 전기의 과다한 누진제 및 상대적으로 저렴한 산업용 전기요금제 때문에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소비자가 이득을 보고 일반 가정이 징벌적인 누진 전기요금을 내고 있다. 전기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적절한 가격을 지불하는 제도가 시급하다.
* 관련 링크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91403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