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이신두 교수, "R&D 성과, 실험실서 벗어나 中企 살리는 디딤돌로"(한국일보,2015.12.28)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4%를 상회한다. 하지만 정작 산업 현장에서는 이 같은 성과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5월 실험실에 갇혀 있던 R&D 성과를 산업계로 끌어 내기 위해 정부 R&D 혁신방안을 내놓았다. 정책이 시행된 지 7개월을 맞아 산업계에서는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정부와 산ㆍ학ㆍ연 전문가들이 28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 모여 R&D 혁신방안의 성과와 산업계 변화를 짚어보는 좌담회를 가졌다.
나 홀로 연구에서 경제활성화 디딤돌로
최종배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전략본부장=정부에서 국가 R&D 혁신을 시도한 것은 사실상처음이다. 과거에는 정부가 연구비를 나눠주기만 하면 성과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많은 연구성과가 실험실에 갇혀 있었다.”
이신두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대학도 정부출연연구기관도 ‘나 홀로 연구’에 집중했다. 그래서 국내 최초, 세계 최초 연구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상용화 성과가 드물다. 이번 혁신방안은 국가 R&D 성과가 기업을 통해 상용화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의미있다.”
최 본부장=”지금까지 연구와 시장 간에 괴리가 컸다. 산ㆍ학ㆍ연 간에도 협업보다 경쟁이 많았다. 그래서 미래부는 출연연구기관과 대학에 중소기업 연구소 역할을 부여하고 연구성과 상용화 과정을 중소ㆍ중견기업에 맡기는 내용의 R&D 혁신방안을 만들어 지난 5월 발표했다.”
이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우리나라는 대기업 위주 정책으로 경제성장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어려우면 나라 경제가 휘청거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는 중소ㆍ중견기업이 커야 한다. KIST를 비롯한 출연연들이 일부 역량을 중소기업 지원으로 옮겨야 한다.”
이 교수=“국내 전체 일자리의 88%,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다. 그런데 중소기업의 80% 이상이 내수에만 매달린다. 세계시장에서 자생력을 키우려면 기술혁신이 필수다. 국가 R&D는 이 부분에 기여해야 한다.”
중기, 출연연과 협업해 매출 증대
이현순 두산 부회장=“국내 기업연구소가 3만5,011개인데 이 중 1,284개가 대기업과 중견기업 소속이고 나머지가 중소기업 연구소다. R&D를 하는 기업의 96.3%가 중소기업이란 얘기다. 그런데 중소기업 연구소 가운데 일부는 금융 지원으로 연명하는 ‘좀비’ 연구소이고 연구 수준이 대기업에 납품하기 위한 생산기술 지원 정도에 그치는 곳도 많다.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곳도 물론 있다. 중소기업을 통해 국가 R&D 상용화가 효율적으로 이뤄지려면 먼저 이들을 제대로 분류할 필요가 있다.”
이 원장=“KIST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중소기업 45곳을 ‘케이-클럽’이란 이름의 회원사로 선정했다. 이들의 기술 난관을 연구자들이 해결해주거나 주요 기술을 이전하는 등 긴밀한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 가시적인 성과도 나왔다. 의료기기업체 유앤아이는 체내에서 스스로 분해되는 뼈 접합용 나사를 개발해 매출 6억7,000만원을 기록했고 2년 뒤 매출이 267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형광시약 제조기업 바이오액츠는 독일 기업과 함께 현지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다.”
최 본부장=“이번 혁신방안은 출연연에게 ‘중소기업 전진기지’라는 길을 제시해줬다는 의미가 있다. 실제 출연연이 파견한 연구인력이 중소기업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를테면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과학자가 파견된 우레아텍은 냉장고 제작기술을 혁신해 단위시간당 생산량을 50% 끌어올렸다. 성일하이텍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과학자가 파견된 후 고품질 리튬2차전지 원료 생산으로 수출액이 1,000만달러 증가했다.”
이 원장:=“출연연이 과거엔 기초원천 연구에만 집중하며 중소기업 지원에 큰 관심이 없었다. KIST도 전체 예산의 2% 정도만 지원해 시늉만 냈다. 하지만 이번 혁신방안을 계기로 중소기업 지원 예산을 7~8%까지 끌어올렸고 2017년에 15%로 늘릴 계획이다.”
“대기업도 국가 R&D 체계의 일원”
현재 국가 R&D를 수행하는 대학이나 출연연이 기업과 협력하는 비중은 17.6%에 불과하다. 미래부는 R&D 혁신방안으로 이를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을 이를 위해 대기업에도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 교수=“중소ㆍ중견기업들이 개발한 기술을 상용화 하는 과정에서 대기업이 시험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대기업이 일부 연구비를 쓰면 국가가 대기업 R&D를 지원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 부회장=“우리나라 R&D 지원 체계는 의도적으로 대기업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전기자동차 기술을 개발할 때 여러 중소 부품업체와 협력해야 한다. 이때 대기업이 중소업체 부품을 자사 자동차에 설치해 기술을 검증하는 용도로 연구비를 쓰면 정부 지원을 받는다고 비판한다. 기술 사업화 체계 안에 대기업을 구성원으로 포함시키면 신기술이 자연스럽게 실험실과 시장을 순환할 수 있다.”
이 교수=“R&D 혁신이 중소기업 지원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대학들 간에 앞다퉈 지원 기업 수를 늘리려는 불필요한 경쟁을 하고 있다. 대학은 중소기업 지원보다 신기술을 이용한 창업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혁신방안이 정착하려면 대학, 출연연 등 기관별 특성에 맞춰 차별화한 세부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과학계 물리ㆍ화학적 융합 시도
이 부회장=“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R&D 비용 약 63조7,341억원 가운데 78.2%인 49조8,545억원이 민간기업 돈이다. 대기업들은 그 중 상당 부분을 여전히 대학이나 출연연과 중복되는 원천ㆍ선행기술 개발에 쓰고 있다. 국내에서도 가능한 R&D를 외국에 맡기는 경우도 잦았다. 산ㆍ학ㆍ연 과학자들의 교류가 턱없이 적었기 때문이다. 학과별 벽도 여전히 높다.”
이 교수=“대학 내에서 R&D 주도권 다툼도 빈번하다. 가령 스마트자동차 기술을 개발하려면 전자공학과 기계공학 분야 간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식이다.”
이 원장=“그런 벽을 허무는 시도가 시작됐다. KIST 강릉 분원에 지난 10월 설치된 ‘스마트팜 솔루션 융합연구단’에 3년간 276억원을 투입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식품연구원 등 4개 출연연과 SK텔레콤 등 10개 기업 연구자들이 모여 농작물이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조건을 찾아 자동 조절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처럼 여러 분야 과학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초대형 연구를 추진하는 융합연구단이 현재 9개인데 2017년 20개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 부회장=“산업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R&D 혁신은 시의적절한 조치다. 중요한 것은 10~20년을 내다보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원장=“국가 R&D 체계에서 산ㆍ학ㆍ연 각자의 역할을 본래대로 되돌리자는 게 결국 R&D 혁신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출연연은 기업이나 연구자 개인이 할 수 없는 연구와 중소기업 지원에 집중하고 대학은 연구자 평가에 상용화 실적을 반영하고 기업은 국가 R&D 성과를 상용화해야 한다.”
최 본부장=“혁신방안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미래부에 과학기술전략본부를 신설했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정부 주도의 혁신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거꾸로 과학계에서 변화한 모습을 보이고 정책이 맞춰가는 방식으로 가야 진정한 혁신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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