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박영준 교수, 위기의 `한국 제조업` 구하기(디지털타임스,2015.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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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제조업이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정부 및 사립 연구소가 주장하는 제조업 위기와 해법의 골격은 다음과 같다. 철강, 조선, 석유화학, 그리고 반도체를 중심으로 하는 IT제조업이 과잉투자로 인해서 세계 경기 의존도가 과도하게 크고, 중국 등 후발국이 추구하는 업종과 수출 시장에서 대부분 충돌하면서 경쟁력을 잃어 간다는 점이다.
경제론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제조업을 빨리 해외로 옮기고 한국을 R&D 기지로 만들고 서비스 산업을 경제 성장의 견인차로 만들자는 것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제조업에 집착한 결과라는 견해에 바탕하고 있다. 즉, 경쟁력을 잃어가는 제조업을 해외로 보내는 대신, 국내에서 끌어안고 있다가 결국은 소니나 파나소닉과 같은 회사를 2류 회사로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제조업을 해외에 내보내면 산업공동화 때문에 일자리가 떨어진다는 제조업 옹호론자의 주장이 일본 저성장 20년의 주범이라는 인식이다.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이기는 하나, 제조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우선 소니나 파나소닉의 2류화는 제조업이어서라기 보다는 기술 흐름을 읽지 못한 투자 전략의 부재에서 읽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빠른 도래, 그리고 개인용 통신기기의 컴퓨터화라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한 것이다. 같은 기간에 한국 전자회사는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전략적 투자를 지속적으로 했다.
첨단 제조업의 특징은 시장전략, R&D, 제조, 그리고 방대한 소프트웨어를 포함하는 전방위 협력사로 이뤄진 집적된 능력에 의해서 결정된다. 메모리 공장이 지어지면, 주위에 협력사 선단이 형성되어 작은 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성공적인 메모리 공장을 위해서는 건설 인프라, 진공장비 인프라부터, 진공 로봇, 그리고 제조 최적화 CAD 소프트웨어 인프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가 바로 새로운 서비스 산업이 만들어 지는 현장이 된다. 제조업=최첨단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지는 현장이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후방 기술들이 새로운 첨단 산업을 만들어 내게 된다. 메모리에서 배운 청정기술을 이용해서 최근 바이오 물질 공장을 짓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침체에 빠진 한국 IT는 자체 기술을 이용해서 IoT, 지능 로봇 시대를 견인할 것이다. 첨단 제조업이 해외에 이전하게 되면, 관련 첨단 인프라가 같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국내에는 국수집과 같은 서비스만 남게 되는 것이 현대 제조업의 특징이다. 이 때문에 영국이 나노 제조업(유럽 나노 플래그쉽)을 유치하고 미국이 다시 반도체를 비롯한 제조업에 열중하는 이유다. '제조업=레가시(낡은 것)'이라는 등식은 예전 패러다임이고 이러한 제조업이라면 어차피 후발 국가에 넘겨줘야 하는 선물이 될 것이다. 첨단 제조업이 이전하면, 국가의 R&D추진력을 잃게 되고, 소프트웨어 산업 또한 잃게 된다. 해외로 이전한 제조업이 왜 국내 대학 R&D에 투자하겠는가. 중국 대학에 투자하고 베트남 대학을 키우려 할 것이다.
기로에 선 지금, 정부는 첨단 제조업에 대한 틀린 시그날을 보내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를 대기업에서 잘 한다고 해서, 정부 R&D 우선 순위에서 빼고 있다. 이는 한국의 첨단 제조업을 포기한다는 정부의 선언이며, 결과적으로, 소프트웨어, R&D 추진력을 동시에 잃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박영준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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