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이창희 교수, "수직 계열화, 한국이 개도국이었을 때 유효했던 모델"(조선,2016.04.22)
['made in Korea' 신화가 저문다]
이창희 교수
"다국적 기업 3M은 LCD(액정표시장치)의 핵심 부품을 삼성·LG·BOE 같은 세계적인 디스플레이 업체들에 모두 공급합니다. 수직계열화라는 사슬에 묶여 있지 않기 때문에 세계 각지에 부품을 납품할 수 있고, 여기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계속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세계적인 기업이 됐습니다."
서울대 이창희 교수(전기공학·사진)는 21일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수직계열화의 시대는 끝났다"며 "대기업에 중소·중견 부품·장비 업체들이 사슬처럼 묶여 있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국에서는 3M 같은 기업이 절대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3M은 사무용품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LCD에서 화면 색을 밝게 해주는 특수 필름도 생산한다. 현재 주요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모두 3M의 필름을 쓴다.
이 교수는 "수직계열화는 한국이 개발도상국이었을 때에 유효했던 모델"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한국 기업들이 선진국을 추격할 당시만 하더라도 대기업부터 부품·장비 중소기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수직계열화 모델은 경쟁력이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 주도의 성장 모델이 한계에 달하고 벤처 등 중소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해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을 수직계열화로 묶어둬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지금 한국 부품 업체들은 납품하는 대기업으로부터 판매가격, 영업이익률까지 통제받고 경쟁 업체에는 납품도 못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수익을 남기고 R&D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독일·일본의 부품 업체들은 세계 각지의 대기업에 제품을 공급하며 '히든 챔피언'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수직계열화에 묶인 한국은 '대기업은 세계 1류, 부품 업체는 2류'라는 인식만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범용 부품이나 기술은 시장을 개방해 모두가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최소한 한국이 세계 1위인 디스플레이 업계부터 수직계열화를 깨고 부품 시장을 개방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정부도 기업들이 불공정 계약으로 수직계열화를 고착시키려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대기업들이 경쟁사 부품업체로부터도 납품을 받는 교차구매가 활발해지도록 도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