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이진형 스탠퍼드大 교수, 파킨슨병 진단 길 연 여성박사 “의대 대신 공대 진학 백번 잘한 일”(동아,2017.02.03)
뇌 회로도 만든 이진형 스탠퍼드大 교수
파킨슨병의 뇌 구조를 전기회로도로 만들어 파킨슨병과 난치성 뇌질환의 조기 진단 및 치료에 길을 연 미국 스탠퍼드대 이진형 교수는 외모만 보면 여전히 학생 같다. 그는 2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명색이 교수인데도 주변에선 조교로 착각하는 외국인 교수가 많다”며 웃었다.
한국 여성 최초로 2012년 스탠퍼드대 공대 및 의대 교수가 된 그는 서울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스탠퍼드대에서 이미징테크놀로지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주는 ‘새로운 혁신가상’, 2012년엔 미국간질병재단의 간질치료프로젝트상, 2013년 알츠하이머협회 선정 신(新)연구자상을 받았다.
막연하게 과학자 내지 공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10세 때였다. 이 교수는 “노력과 열정으로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며 “성장하면서 과학자나 공학도의 길이 진리를 탐구하고 새로운 것을 알아내는 데 기초가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능지수(IQ) 157에 멘사 회원이었던 그는 대학 입학 때부터 천재 소녀로 알려졌다. 법대 에 입학한 여자 수석과 0.8점가량 차이가 났다. 당시 전기공학부에 진학하려고 하자 입학 면접 교수가 “너는 아무 학과나 진학이 가능한 성적인데 여학생이 왜 전기공학부에 가려느냐”고 물었다. 이런 질문은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내내 따라다녔다. “공대 나오면 돈 많이 벌 수 없다” “여학생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 등이었다. 실제로 동기들 상당수는 의대로 다시 진학하거나 사법시험에 응시했다.
부모도 처음엔 딸의 의대 진학을 원하며 그런 바람을 은근히 내비쳤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래,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라며 딸의 뜻을 존중했다. “너는 여자이니깐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씀 한 번 안 하신 부모가 지금도 고맙다.
이 교수는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신 부모가 많은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면서 “자신의 꿈과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 여기에 사회에서의 가치가 일치를 이루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의 남동생도 같은 과 후배로 들어왔고, 지금은 미국에서 스타트업을 하며 꿈을 키우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스탠퍼드대에 온 것도 행운이다. 다른 과와의 융합을 인정하고 밀어주기 때문이다. 바이오공학 교수가 신경과 교수들과 한 팀이 돼 의대 교수 직함까지 가진 이유도 이 학교가 진정한 융합을 강조하고 실천하기 때문이다. 우리 과가 최고이고 다른 과를 존중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의대 풍토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교수는 “물론 각자 생계를 이어나갈 직업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한국 젊은이들은 꿈보다는 안정을 찾아가는 위주로 직업을 선택하고 있다”면서 “개인의 선택과 무관한 사회적 어려움으로 인해 또 주변에서 더 많은 ‘권유’를 받아 현실과 타협하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나의 꿈은 뇌회로의 이해를 통해 전자기기를 고치듯 난치성 뇌질환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좀 더 쉽게 고치는 것”이라며 “꿈을 이뤄내기 위해 또 한 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나이가 궁금하다”고 물었더니 “그건 프라이버시예요. 아시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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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 진단과 치료에 전기회로 개념을 도입해
획기적 성과를 낸 미국 스탠퍼드대 이진형 교수가 교정에서 포즈를 취했다.
“할머니께서 12년 전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로 고생하시다 최근에 돌아가셨어요. 뇌의 작은 혈관 하나가 터졌을 뿐인데 믿을 수 없었죠. 뇌 과학에 좀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습니다.”획기적 성과를 낸 미국 스탠퍼드대 이진형 교수가 교정에서 포즈를 취했다.
파킨슨병의 뇌 구조를 전기회로도로 만들어 파킨슨병과 난치성 뇌질환의 조기 진단 및 치료에 길을 연 미국 스탠퍼드대 이진형 교수는 외모만 보면 여전히 학생 같다. 그는 2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명색이 교수인데도 주변에선 조교로 착각하는 외국인 교수가 많다”며 웃었다.
한국 여성 최초로 2012년 스탠퍼드대 공대 및 의대 교수가 된 그는 서울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스탠퍼드대에서 이미징테크놀로지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주는 ‘새로운 혁신가상’, 2012년엔 미국간질병재단의 간질치료프로젝트상, 2013년 알츠하이머협회 선정 신(新)연구자상을 받았다.
막연하게 과학자 내지 공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10세 때였다. 이 교수는 “노력과 열정으로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며 “성장하면서 과학자나 공학도의 길이 진리를 탐구하고 새로운 것을 알아내는 데 기초가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능지수(IQ) 157에 멘사 회원이었던 그는 대학 입학 때부터 천재 소녀로 알려졌다. 법대 에 입학한 여자 수석과 0.8점가량 차이가 났다. 당시 전기공학부에 진학하려고 하자 입학 면접 교수가 “너는 아무 학과나 진학이 가능한 성적인데 여학생이 왜 전기공학부에 가려느냐”고 물었다. 이런 질문은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내내 따라다녔다. “공대 나오면 돈 많이 벌 수 없다” “여학생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 등이었다. 실제로 동기들 상당수는 의대로 다시 진학하거나 사법시험에 응시했다.
부모도 처음엔 딸의 의대 진학을 원하며 그런 바람을 은근히 내비쳤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래,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라며 딸의 뜻을 존중했다. “너는 여자이니깐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씀 한 번 안 하신 부모가 지금도 고맙다.
이 교수는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신 부모가 많은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면서 “자신의 꿈과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 여기에 사회에서의 가치가 일치를 이루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의 남동생도 같은 과 후배로 들어왔고, 지금은 미국에서 스타트업을 하며 꿈을 키우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스탠퍼드대에 온 것도 행운이다. 다른 과와의 융합을 인정하고 밀어주기 때문이다. 바이오공학 교수가 신경과 교수들과 한 팀이 돼 의대 교수 직함까지 가진 이유도 이 학교가 진정한 융합을 강조하고 실천하기 때문이다. 우리 과가 최고이고 다른 과를 존중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의대 풍토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교수는 “물론 각자 생계를 이어나갈 직업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한국 젊은이들은 꿈보다는 안정을 찾아가는 위주로 직업을 선택하고 있다”면서 “개인의 선택과 무관한 사회적 어려움으로 인해 또 주변에서 더 많은 ‘권유’를 받아 현실과 타협하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나의 꿈은 뇌회로의 이해를 통해 전자기기를 고치듯 난치성 뇌질환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좀 더 쉽게 고치는 것”이라며 “꿈을 이뤄내기 위해 또 한 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나이가 궁금하다”고 물었더니 “그건 프라이버시예요. 아시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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