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차상균 교수, 4차 산업혁명 : 디지털혁신 인재가 이끄는 글로벌 일자리 전쟁 (KDI 8월호)
디지털혁신 인재는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지식과 시각으로 문제를 발굴하는 능력을 갖추고 새로운 디지털 도구로 창의적 솔루션을 만드는 인재다. 빅데이터와 AI 기반의 디지털혁신이 전 산업 분야로 확산되며 세계적으로 산업이 재편되는 디지털혁신 시대에 인재 확보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빅데이터로부터 인간의 지적 능력을 모사할 수 있는 모델을 기계적으로 학습하고 추론하는 딥러닝 AI(인공지능) 소프트웨어와 이를 클라우드에서 효율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구글 TPU(Tensor Processing Unit), 엔비디아(NVIDIA) GPU(Graphics Processing Unit) 같은 슈퍼컴퓨터 기술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모든 산업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기반 플랫폼 기술이다.
2017년 5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선 1년 전 은퇴한 데이빗 패터슨 명예교수가 학교의 강단에 다시 섰다. 구글의 최신 딥러닝 AI 가속기 TPU의 기술적 우수성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서였다. TPU는 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에서 그 가치를 입증한 후 음성인식 디지털비서 등 구글의 거의 모든 AI서비스로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
대학의 혁신인재 영입해 시장의 파괴적 혁신 이끄는 기업들
구글은 패터슨 교수가 은퇴하자마자 TPU 프로젝트의 석좌 엔지니어로 모셔갔다. 2010년부터 16년간 스탠포드대를 이끌어온 존 헤네시 전 총장과 함께 컴퓨터 아키텍처에 독보적 업적을 세운 69세의 노교수는 학계를 대변하는 실리콘밸리 혁신의 전도사다. 구글은 패터슨 교수 이전에도 2011년 앤드류 응 스탠포드대 교수를 초빙해 구글 브레인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지난해에는 같은 대학의 페이페이리 교수를 클라우드사업 부문에 영입했다. 원천연구로 앞서 가는 대학 교수를 기업이 내부로 영입해 빠른 속도로 사업화 기술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혁신 패러다임이다.
중국 바이두는 응 교수를 지난 3년간 수석과학자로 영입해 자연어 처리, 자율주행 등 AI기술 개발 책임을 맡겼다. 바이두는 AI사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올해 1월 마이크로소프트 수석부사장 루치 박사를 COO(Chief Operating Officer)로 영입해 5만여명의 임직원을 이끌게 했다.
PC 그래픽 칩으로 잘 알려진 실리콘밸리의 엔비디아는 시장에서 AI 기계학습 하드웨어 회사로 새로 태어났다. 이 회사의 칩이 구글, 아마존 등 웬만한 기업의 클라우드는 물론 테슬라의 자율주행 플랫폼에도 채용되면서 주가는 지난 2년간 8배나 뛰어 시가총액이 110조원에 이른다.
엔비디아의 도약은 준비된 것이다. 스탠포드대에서 석사를 마친 뒤 1993년 창업한 젠슨 황 엔비디아 회장은 2008년 모교의 공과대학 본부 신축기금으로 사재 3천만달러를 기부했다. 스탠포드대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던 황 회장은 2009년 이 대학의 병렬 컴퓨팅 전문가 빌 달리 교수를 수석과학자로 모셔왔다. 빅데이터 AI 시대를 선제적으로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엔비디아 역시 대학의 핵심 혁신인재를 영입해 시장의 파괴적 혁신을 이끌어낸 것이다. 불과 1만여명의 직원을 가진 작은 다윗 엔비디아에 밀린 골리앗 인텔은 테슬라가 엔비디아 기술을 채택하면서 결별한 이스라엘의 모빌아이(Mobileye)를 150억달러 거금을 주고 지난 5월 인수하게 된다.
빅데이터와 AI 기반의 디지털혁신이 전 산업 분야로 확산되면서 구글 같은 혁신기업은 물론 경쟁에서 밀린 기업도 크고 작은 혁신기업을 인수하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는 대학의 원천기술과 벤처캐피털이 결합해 생겨난 벤처들을 대기업이 인수하면서 대학 창업의 성공률이 높아지고 있다.
대학이 국책연구소의 주도 아래 기술을 개발해 기업에 이전하는 우리의 산학연 체계는 추종자 방식이다. 정부가 대학에 원천연구비를 중장기적으로 지원하고, 기업이 대학의 핵심 혁신인재를 높은 인센티브로 영입하거나 대학의 원천기술로 창업한 벤처를 인수하는 패러다임이 혁신의 질이나 속도에서 우월한 것은 자명하다.
제조업 중심 성장 한계에 부딪힌 한국, 디지털혁신 인재 100만명 양성해야
애플은 2016년 8월 워싱턴대에서 창업한 지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은 카를로스 구에스트린 교수의 고성능 딥러닝 클라우드 벤처를 2억달러에 인수했다. 아마존과 구글이 AI 음성인식 스피커 에코(Echo)와 구글홈으로 시장을 선도하자, 유사한 서비스 시리(Siri)를 먼저 선보였던 애플이 자사의 AI 클라우드 플랫폼을 강화하기 위해 인수한 것이다.
1972년 창업한 독일 소프트웨어기업 SAP는 미 오라클(Oracle)의 공격에 대응하고자 변신을 위한 외부의 피와 오라클을 넘어설 원천기술을 수혈하기 위해 필자의 실험실 벤처를 2005년 인수했다. 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최고경영층의 절박함과 함께 2011년 출시한 실시간 빅데이터 플랫폼 SAP HANA의 성공으로 SAP는 독일 주식시장에서 지멘스를 앞지르고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 됐고 임직원 수도 8만7천명으로 2005년에 비해 2.5배 증가했다.
지난 2월 지멘스 감독이사회는 차기 회장으로 HANA 출시 시점에 SAP 공동 CEO를 지냈던 짐 스나베를 지명했다. 제1차 산업혁명기에 태동한 170년 역사의 중공업기업이 빅데이터 사업가를 지배구조의 정점에 내정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 뮌헨공대의 알폰소 켐퍼 교수는 SAP HANA를 추종하는 기술로 창업한 후 2016년 스탠포드대 창업 상장기업 태블로(Tableau)와 M&A했다. 성공한 모델의 제2사례를 만드는 것은 위험부담도 적고 성공 소요시간도 짧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구글, 아마존, 테슬라 같은 글로벌 디지털혁신 기업들은 연봉 3~4억원대의 빅데이터 AI 전문가들과 광고, 상거래와 같은 전문지식을 갖춘 데이터 사이언스 인재 확보를 위해 경쟁하고 있다. 반면 제조업 중심 성장 한계에 부딪힌 우리나라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잡지 못하는 청년들의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세계적으로 산업이 재편되는 디지털혁신 시대에 인재를 확보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실업이 일어난 후 대책에 투자하기보다 일자리를 만들 인재육성에 선제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디지털혁신 패권 전쟁의 양 축에서 5천만 대한민국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100만의 디지털혁신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디지털혁신 인재는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지식과 시각으로 문제를 발굴하는 능력을 갖추고 새로운 디지털 도구로 창의적 솔루션을 만드는 인재다. 잘게 쪼개진 현재의 대학 교육으로는 이런 인재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학문 간 벽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이에 대한 답은 학부 전공에 상관없이 모든 분야의 학사 학위 졸업자를 뽑아 디지털혁신의 근간이 되는 데이터 사이언스와 파괴적 혁신을 교육하는 허브 형태의 대학원 설립이다. 경제학, 경영학 전공자가 핀테크, 전자상거래 분야의 혁신을 이끌고, 의학이나 생물학 전공자가 미래의 정밀의료 솔루션을 만들고, 공학도가 자율주행을 이끌게 하기 위함이다. 빅데이터기술과 데이터 사이언스는 이 모든 디지털혁신의 공통된 프레임워크다.
빅데이터기술과 데이터 사이언스 교육과 관련된 가장 큰 어려움은 탈학제적 마인드를 가진, 현장 경험이 있는 교수 요원의 확보다. 중국의 ‘천인 프로그램’과 같은 공격적인 전문성 있는 해외 교수 요원의 유치를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한 때다.
- 연중기획+차상균.pdf (347 KB, download:1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