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이재홍 교수, 중국이 한국 과학기술을 추월하는 이유(중앙일보,2017.11.29)
중국은 한 번 국가 과학기술 과제로 지정이 되면 지원이 수십년간 지속됩니다. 신입 조교가 연구실에 들어와서 그가 교수를 하고 퇴임때까지 붙들고 연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얼마를 주는지 아세요? 매년 1000만 달러(108억원)을 줍니다. 장비구입비는 2000만 달러~3000만 달러를 따로 줘요. 국가 중점 실험실 1곳마다 그렇습니다. 이보다 더 지원이 많은 '국가 실험실'이 있는데요, 칭화대에 정보통신 분야에 1곳이 있습니다. 여기는 '중점실험실'의 5~10배를 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지원금이 매년 1000억원이 넘어가는 거죠.
듣기만 해도 부러운 이 '실화'는 이재홍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전한 이야기다. 이 교수는 11월 23일 서울대학교 중국연구소에서 주최한 <변하는 중국, 변하지 않는 중국> 심포지엄에서 <중국 이동통신 산업 및 기술 발전과 한중 협력사례>세션을 맡아 발표했다.
그는 중국 과학기술계가 지닌 잠재력을 일찍 눈여겨 보고 92년 수교 이래 이동통신 분야에서 한중 협력을 해온 1세대 교수다. 삼성 CDMA 통신기술이 중국에 진출했을 때도 그 물꼬를 트는데 앞장선 사람이 이재홍 교수였다. 중국의 발전상을 목도한 산 증인이다.
이 교수는 "중국 정부는 장기적인 과학기술 정책을 끌고 가면서 참여구성원의 변화도 크지 않다"며 "반면 한국은 중국의 장기적 통신정책에 대한 이해 부족, 인력의 잦은 변경, 실적주의 위주의 분위기라는 한계점이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 수십년간 발전해온 중국의 통신산업을 회고했으며 토론자로 참여한 이춘근 과학기술 정책 연구원 글로벌 정책 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은 제언을 했다. 두 참여자는 과학기술 정책에 연속성이 필요하다는 점과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다음은 심포지엄 주요 내용.
이춘근 과학기술 정책 연구원 글로벌 정책 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중국 과학기술계의 인사들이 한국 과학기술을 평가하며 이렇게 말하더라. "한국은 정책 과제 제목은 팬시(fancy)한데 지속되는 게 2년 이상인 것을 거의 못 봤다"는 것이다. 과거에 중국이 한국으로부터 과학기술을 배울 때는 한국이 국가 발전을 기술을 통해 이루는 것에 감명을 받아 중국도 배웠던 건데 지금은 상황이 역전된 분위기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의 863계획이다. 이는 미국의 스타워즈 계획과 비슷한 것이다. 항공우주와 레이저, 핵 등을 국가 중점 과제로 삼고 이에 대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1986년 3월에 만들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는데 863 계획은 지금도 하고 있다. 31년동안 정책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투자 강도는 오히려 세지고 있고 세부계획에 투입되는 자금은 더 많아지고 역량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정권의 변화, 몇 차례의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정책 연속성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정부부처의 명칭도 잦은 변화가 있어 중국 과학기술계에서 협력에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과기부 장관이 부총리급이었는데 부서가 과학기술부가 아닌 교육과학부 장관으로 되면서 중국 쪽에서는 카운터 파트너가 2곳이 되어서 (과학부와 교육부)헷갈린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예컨대 중국의 공업신식화부가 한국에서 협력대상을 찾을 때 과연 어느 곳과 해야하나 고민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중국이 느끼기에 한국은 너무 자주 국책 과제가 바뀌는 나라다. 중국 쪽에서 한국에 "(과제를)쫀쫀하게 하지 말고 큰 것으로 하자"고 하더라. 중국과 미국의 경우는 5년간 1억5000만 달러 정도 되는 과학 과제들이 나오니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축사하고 그랬던 것이다. 미중이 3개 굵직한 과제를 산학협력을 하더라.
중국에서 제안할때 5년 이상 장기적으로 끌고 가자는 게 많다. 반면 한국은 협력과제 하나당 2억원인데다가 채 2년도 안 가는 것들도 많다. 그러다보니 중국 측에서도 한국과는 할 마음이 없다는 반응이 크다.
중국의 과학기술은 기업과 정부와 학교가 밀착관계다. 만약 중국에 삼성이란 기업을 따라잡는 목표를 연구하는 팀이 있다면 이들은 상대의 기술을 흡수한 뒤에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자국 시장에서 테스트를 하고 미국까지도 진출하는 일련의 과정을 해나간다.
이런 것을 추진할 때 중국의 강점은 자신의 수준을 분야별로 잘 평가하고 어느 쪽에 돈을 투자해야 할지를 안다는 거다.
즉, 전략 조정을 기민하게 한다. 1980~90년대만 하더라도 중국은 군의 일부 기술을 제외하고는 대학, 연구소에서 좋은 기술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많은 돈을 연구소에 쏟아부었다. 거기서 쏟아 부은 걸 나중에 기업 쪽으로 퍼지도록 했다. 그러면서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스스로 창업하게 하는 정책까지 폈다. 베이징대, 칭화대가 만든 기업은 물론이고 중국 과학원에서 파생된 기업들이 많이 있다.
이재홍 교수=중국은 건국때는 '우전부'가 있었다. 우편과 전신을 의미한다. 1998년이 돼서 정보화가 중요하다고 해서 '신식'(정보)부를 세웠다. 지금 중국에서 통신산업을 담당하는 부서는 공업 및 신식화부다. 여기서 전기전자산업과 통신을 겸한다.
98년 이래로 중국 장관(중국에선 부장이라고 지칭)들의 재임 기간을 보면 우리나라에 비해 상당히 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확실히 재임기간이 매우 긴 편이다. 정책의 연속성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최초의 과학기술 주무 부장(장관)이던 녜룽전만 해도 1958년~1970년까지 부장(장관)으로 일했다, 그는 군 원수 출신이다. 당시에는 과학기술과 국방 기술이 떼려야 뗄 수 없었다. 완강이라는 부장이 가장 최근인데 무려 2007년에 부장(장관)을 맡은 이다. 그가 지금도 하고 있다.
정보통신산업은 크게 3가지로 구성된다.
중국은 개혁개방 전까지는 굉장히 이 산업이 빈약했다. 개혁 개방이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게 광케이블을 설치한 것이다. 그리고 유선전화도 제대로 없는데 이동통신 서비스에 뛰어들었다. 중국은 1991년 기준 이동통신 가입자가 4만7544명이었다. 그런데 2003년말에는 이동전화 가입자가 유선전화 가입자를 능가한다. (이동전화는 2억6869만명> 유선전화는 2억6330만명).
그리고 2016년 말에는 이동전화 가입자가 무려 13억2193만명(보급률 96.2%)이 됐고 유선전화는 2억662만명으로 집계됐다.
중국서는 세대별 변화도 컸다. 2010년 중국 내에서 2G 가입자가 94.5%에 달했는데 2015년에 이 비중이 28.8%로 뚝 떨어졌다.
중국 통신의 특징은 3세대(3G)부터는 TD-SCDMA라고 해서 중국 표준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 이후에 4세대의 LTE에서도 중국식 표준을 만들었고 5세대에서는 중국이 두각을 드러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건 앞서 언급한 863 계획이다. 이걸 안 하면 중국 미래는 없다고 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서 큰 예산을 할당했다. 생물, 우주항공, 에너지, 신소재 등에 해양기술이 나중에 추가됐다. 그 중 가장 성공적인 게 통신기술이었다.
중국은 현재 세계 선두에 서는 통신 기술들을 확보했다. 중국 정부가 지원하는 '국가 중점 실험실'은 31개 실험실이 있는데 매 5년마다 재심사를 한다. 칭화대 안에 있는 중점 실험실의 경우는 건물이 넓은데 배경을 물어보니 화교가 자금을 대서 지어 줬다고 하더라. 500명이 앉아 있는데 학생들은 300명이고 나머지는 전부 교수 혹은 연구원이더라.
중국 연구실의 독특한 점은 한 대학에서만 참여하는 게 아니라 다른 대학교 교수들도 참여할 수 있는 구조다. 그리고 대학이 세운 기업들이 실력이 좋다. 칭화대에서 나온 기업들도 적지 않다.
통신 분야에 있어서 3분야 모두 중국 기업의 약진으로 한국은 시장 점유율이 감소하는 추세다.
우선 중국의 이동통신 운영 서비스 사업에는 한국의 참여가 사실상 없는 게 현 주소다. 또한 중국이 기술합작 대상국에서 한국을 제외했고 미국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뼈아프지만 현실이다.
두 번째는 통신장비를 보자. 한국은 장비 수출이 워낙 약한 반면 중국 기업은 약진하고 있다. 과거에는 세계적 유수 장비업체인 에릭슨, 지멘스, 루센트 등에서 중국이 장비를 많이 샀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 토종 장비업체인 화웨이와 ZTE가 잘 하고 있다. 화웨이는 장비 매출 세계 1위다.
그는 중국 과학기술계가 지닌 잠재력을 일찍 눈여겨 보고 92년 수교 이래 이동통신 분야에서 한중 협력을 해온 1세대 교수다. 삼성 CDMA 통신기술이 중국에 진출했을 때도 그 물꼬를 트는데 앞장선 사람이 이재홍 교수였다. 중국의 발전상을 목도한 산 증인이다.
이 교수는 "중국 정부는 장기적인 과학기술 정책을 끌고 가면서 참여구성원의 변화도 크지 않다"며 "반면 한국은 중국의 장기적 통신정책에 대한 이해 부족, 인력의 잦은 변경, 실적주의 위주의 분위기라는 한계점이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 수십년간 발전해온 중국의 통신산업을 회고했으며 토론자로 참여한 이춘근 과학기술 정책 연구원 글로벌 정책 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은 제언을 했다. 두 참여자는 과학기술 정책에 연속성이 필요하다는 점과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다음은 심포지엄 주요 내용.
이춘근 과학기술 정책 연구원 글로벌 정책 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중국 과학기술계의 인사들이 한국 과학기술을 평가하며 이렇게 말하더라. "한국은 정책 과제 제목은 팬시(fancy)한데 지속되는 게 2년 이상인 것을 거의 못 봤다"는 것이다. 과거에 중국이 한국으로부터 과학기술을 배울 때는 한국이 국가 발전을 기술을 통해 이루는 것에 감명을 받아 중국도 배웠던 건데 지금은 상황이 역전된 분위기다.
중국의 과학기술은 기업과 정부와 학교가 밀착관계다. 만약 중국에 삼성이란 기업을 따라잡는 목표를 연구하는 팀이 있다면 이들은 상대의 기술을 흡수한 뒤에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자국 시장에서 테스트를 하고 미국까지도 진출하는 일련의 과정을 해나간다.
이런 것을 추진할 때 중국의 강점은 자신의 수준을 분야별로 잘 평가하고 어느 쪽에 돈을 투자해야 할지를 안다는 거다.
즉, 전략 조정을 기민하게 한다. 1980~90년대만 하더라도 중국은 군의 일부 기술을 제외하고는 대학, 연구소에서 좋은 기술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많은 돈을 연구소에 쏟아부었다. 거기서 쏟아 부은 걸 나중에 기업 쪽으로 퍼지도록 했다. 그러면서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스스로 창업하게 하는 정책까지 폈다. 베이징대, 칭화대가 만든 기업은 물론이고 중국 과학원에서 파생된 기업들이 많이 있다.
통신 3분야에서 서비스, 장비제조, 단말기까지 중국에 위협받아...과학기술 분야 중국에선 장관 했다하면 십 수년...정책 연속성이 절실해
최초의 과학기술 주무 부장(장관)이던 녜룽전만 해도 1958년~1970년까지 부장(장관)으로 일했다, 그는 군 원수 출신이다. 당시에는 과학기술과 국방 기술이 떼려야 뗄 수 없었다. 완강이라는 부장이 가장 최근인데 무려 2007년에 부장(장관)을 맡은 이다. 그가 지금도 하고 있다.
유선전화도 안 깔린 채 무선으로 뛰어든 중국
무선전화 가입자 13억...보급률 96%
무선전화 가입자 13억...보급률 96%
1. 통신서비스 산업(SKT, KT에 비견)2. 장비 제조산업(기지국과 통신망 장비, 일반인들의 눈에는 덜 비춰지지만 중요한 산업) 3. 단말기 제조산업: 휴대전화 단말기(삼성, 애플에 비견)
그리고 2016년 말에는 이동전화 가입자가 무려 13억2193만명(보급률 96.2%)이 됐고 유선전화는 2억662만명으로 집계됐다.
중국서는 세대별 변화도 컸다. 2010년 중국 내에서 2G 가입자가 94.5%에 달했는데 2015년에 이 비중이 28.8%로 뚝 떨어졌다.
중국 통신의 특징은 3세대(3G)부터는 TD-SCDMA라고 해서 중국 표준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 이후에 4세대의 LTE에서도 중국식 표준을 만들었고 5세대에서는 중국이 두각을 드러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건 앞서 언급한 863 계획이다. 이걸 안 하면 중국 미래는 없다고 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서 큰 예산을 할당했다. 생물, 우주항공, 에너지, 신소재 등에 해양기술이 나중에 추가됐다. 그 중 가장 성공적인 게 통신기술이었다.
중국은 현재 세계 선두에 서는 통신 기술들을 확보했다. 중국 정부가 지원하는 '국가 중점 실험실'은 31개 실험실이 있는데 매 5년마다 재심사를 한다. 칭화대 안에 있는 중점 실험실의 경우는 건물이 넓은데 배경을 물어보니 화교가 자금을 대서 지어 줬다고 하더라. 500명이 앉아 있는데 학생들은 300명이고 나머지는 전부 교수 혹은 연구원이더라.
통신 분야에 있어서 3분야 모두 중국 기업의 약진으로 한국은 시장 점유율이 감소하는 추세다.
우선 중국의 이동통신 운영 서비스 사업에는 한국의 참여가 사실상 없는 게 현 주소다. 또한 중국이 기술합작 대상국에서 한국을 제외했고 미국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뼈아프지만 현실이다.
두 번째는 통신장비를 보자. 한국은 장비 수출이 워낙 약한 반면 중국 기업은 약진하고 있다. 과거에는 세계적 유수 장비업체인 에릭슨, 지멘스, 루센트 등에서 중국이 장비를 많이 샀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 토종 장비업체인 화웨이와 ZTE가 잘 하고 있다. 화웨이는 장비 매출 세계 1위다.
세 번째는 단말기이다. 과거에는 외국계 위주였으며 특히 한국이 잘 했었다. 1996년에 한국의 휴대전화 대 중국 수출은 0.6억달러였는데 2016년에는 111억 달러로 크게 늘었다.
1997년부터 한국의 이동통신 전화기의 대(對) 중국 수출이 폭증했다. 이랬던 이유 중의 하나는 중국의 품질 검사소에 있었다. 중국이 미국 모토롤라의 휴대폰은 중국 내 품질 검사소에서 6~9개월 붙드는데 한국은 1달만에 내보내줬다. 그러다보니 한국 제품은 모토롤라보다 6개월 가량 앞선 제품이 된 셈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오포, 비보, 화웨이, 샤오미 등 중국계가 약진하고 있다. 애플, 삼성, LG의 비중은 크지 않다. 사드 문제가 발생하기 전부터 한국계 브랜드 휴대폰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줄어들고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은 아직 미국만을 쳐다보고 따라잡으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는 듯 하다. 중국을 제대로 보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기사 원문 보기 1997년부터 한국의 이동통신 전화기의 대(對) 중국 수출이 폭증했다. 이랬던 이유 중의 하나는 중국의 품질 검사소에 있었다. 중국이 미국 모토롤라의 휴대폰은 중국 내 품질 검사소에서 6~9개월 붙드는데 한국은 1달만에 내보내줬다. 그러다보니 한국 제품은 모토롤라보다 6개월 가량 앞선 제품이 된 셈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오포, 비보, 화웨이, 샤오미 등 중국계가 약진하고 있다. 애플, 삼성, LG의 비중은 크지 않다. 사드 문제가 발생하기 전부터 한국계 브랜드 휴대폰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줄어들고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은 아직 미국만을 쳐다보고 따라잡으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는 듯 하다. 중국을 제대로 보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