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오성회 교수, 내 부진한 영어능력은 유전자 때문? 방법은 있다!(동아사이언스,2018.01.03)
'한 평생 한국어만 고집하는 나.
남들은 제2외국어, 제3외국어까지 기본으로 한다는데….
오래 보아도 예뻐지기는커녕 점점 더 낯설고 두려운 너, 외국어,
올해는 꼭 정복할 수...있을까?'
새해에는 꼭 꾸준히 외국어를 공부해 경쟁력 있는 인재로 거듭나리라. 영어 회화 학원도 다니고, 미드도 열심히 보고, 외국인 친구도 사귀어 언어 능력을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목표를 올해도 세운 당신. 하지만 어느새 학원은 뜸해졌고, 외국어 실력은 제자리다.
혹시 내 언어 유전자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학습 방법이 잘못됐을까?
당신에게 위안, 혹은 좌절을 줄 사실 하나. 언어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는 있다. ‘Foxp2’는 언어 구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로 알려져 있다. 인간을 비롯한 포유동물은 모두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분자구조가 조금씩 다르다. 715개의 아미노산 분자로 이뤄진 Foxp2는 인간과 침팬지를 비롯한 다른 포유동물 사이에 염기서열의 미세한 차이가 있다. 언어유전자로 알려진 Foxp2가 진화를 거치면서 돌연변이가 나타나 인간이 뛰어난 언어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알려졌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Foxp2 유전자에는 또다른 기능이 있다. 연구팀은 쥐에게 사람의 Foxp2 유전자를 주입해 단백질로 발현시켰다. 그 결과 T자형 미로에서 먹이를 찾는 능력이 20% 향상됐다. Foxp2 유전자는 언어 능력뿐 아니라 학습 능력까지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아, 그래서 학창 시절 내 성적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더라도 자책은 말자.
언어 능력과 유전적 요인의 관련성은 뇌의 별 아교 세포(Astrocyte)에서도 나타난다. 이창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경과학연구센터 박사와 이화여대 뇌인지과학연구소 공동 연구팀은 뇌의 별 아교 세포에서 발현되는 ‘아쿠아포린4’ 유전자가 언어 능력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별 아교 세포는 신경 조직을 지지하는 세포 중 하나다.
연구팀은 아쿠아포린4 유전자의 변이로 단백질을 많이 만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교했다. 그 결과, 단백질을 많이 만드는 사람이 언어 학습과 관련된 뇌 부위 (왼쪽 하후측 측두피질)의 부피가 더 크고 영어 단어 암기 능력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전적으로 타고난 언어 능력을 지녔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 뇌는 어떻게 학습하고 훈련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같은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더 효과적인 외국어 학습법은 없을까?
● 인공지능은 어떻게 언어를 배울까?
사람의 언어를 배우는 인공지능을 보며 외국어 학습법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스스로 학습하는 다양한 딥러닝이 개발되고 있다. 오성회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팀은 사람의 말과 행동의 관계를 스스로 습득하는 인공신경망인 ‘텍스트투액션(Text2Action) 네트워크’를 개발했다. 사람의 행동을 설명하는 문장을 입력하면, 스스로 언어와 행동 사이의 연관성을 학습한다.
연구팀은 텍스트투액션 네트워크에 유튜브 영상에서 추출한 2만9770쌍의 언어와 행동 데이터를 학습시켰다. 그 결과 말 데이터와 거의 비슷한 행동 데이터를 만들어 냈다. 학습하지 않은 말 데이터를 입력했을 때는 기존 데이터를 활용해 적합한 행동 데이터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텍스트투액션 네트워크의 딥러닝은 마치 사람이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외국어를 익히는 것과 비슷하다. 배우고자 하는 언어로 된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 일상 생활에서 자주 쓰는 표현을 듣고 익숙해질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보는 것으로 회화 능력을 향상시키기는 어렵다. 영상을 본 뒤 대사를 정리하고 주요 표현을 반복해 익히는 등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다.
● 아기 새 통해 언어 학습 왕도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사람과 비슷한 언어 능력을 가진 동물들은 어떨까? 많은 과학자들은 인간이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뇌의 변화를 알아내기 위해 오랜 시간 연구해 왔다. 그 연구 방법도 다양한데, 한국뇌연구원 뇌신경망연구부 고지마 사토시 연구원은 노래하는 새를 통해 힌트를 찾고 있다.
카나리아나 십자매 같은 명금류는 사람이 말을 배우는 것과 비슷한 패턴으로 노래를 익힌다. 아기 새는 처음엔 아기의 옹알이처럼 지저귀지만 반복적인 ‘발성학습’을 통해 부모와 비슷한 노래를 부르게 된다. 고지마 박사는 명금류의 노랫소리를 분석하고 뇌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동아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동물을 이용한 뇌과학 기초연구지만, 언젠가는 외국어를 배우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연구 의의를 밝혔다.
고지마 연구원은 사람과 명금류 모두 발성학습을 할 때 사회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아기 새는 아빠 새의 노래를 듣고 배우는데, 같은 소리를 스피커로 들려주면 아기 새는 잘 모른다”며 사회적 관계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이어 “스위치를 눌러 노래가 나오는 기계를 도입하면 다시 노래를 잘 배우는데, 비록 기계지만 일종의 사회관계가 형성된 덕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