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김수환 교수, 중국이 박수 칠 ‘반도체 기밀 공개’(문화일보,2018.04.19)
<김수환 교수>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액은 사상 최대치인 5700억 달러를 넘었고, 반도체는 단일 품목으로선 처음으로 연간 수출액 900억 달러를 돌파했다. 향후 반도체 수출은, 원화강세·고금리·유가상승과 보호무역주의 등 부정적인 요인도 있지만 여전히 양호할 것으로 전망된다.
코트라(KOTRA)의 최근 수출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IT업계의 발전으로 반도체에 대한 중국 내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중국은 2015년부터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고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반도체산업 육성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이 수출 동향 보고서는 아직 중국 업체와 한국 업체 간의 기술 격차 때문에 한국 업체 제조 반도체에 대한 수요는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아성을 노리는 중국 업체에 호재인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지난 2월 대전고법 판결 이후에 고용노동부가 산업재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요청에도 잇달아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의 공개를 허용하겠다고 한 것이다. 다행히 지난 18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반도체전문위원회 전문위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고용부가 정보 공개를 추진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에 국가핵심기술이 일부 포함돼 있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그런데도 고용부 관계자는 근로자의 안전을 이유로 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본 뒤 앞으로 어느 수준까지 공개할지를 논의할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심지어 산업부 관계자는 반도체전문위원회 회의 결과는 보고서에 국가핵심기술이 들어가 있다는 기술적인 판단을 한 것이지, 기술들이 삼성의 영업 기밀이냐 아니냐는 사법부가 다시 판단해야 한다며 국가핵심기술 판단 여부가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아야 한다고 결정짓지는 못한다고 한다.
아마도 고용부와 산업부는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가 모두 공개돼 중국의 경쟁 업체에 들어가도 바로 기술 격차를 줄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너무 안일한 생각이다. 사법부에서는 이 보고서의 내용이 단순히 삼성의 영업 기밀이냐 아니냐를 포함하고 있는지만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분야와 달리는 반도체 분야에서 공정 최적화는 수만 가지 경우의 수가 있는데, 후발 주자들이 이를 찾는 데는 몇 개월에서 몇 년이 걸릴 수 있다. 이 기간이 바로 기술 격차다.
그러나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에는, 중국 업체가 보면 반도체 관련 핵심 기술 정보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아 외부로 유출될 경우 이 몇 년이라는 기간 없이 단숨에 추격할 수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은 단번에 추락할 것이다. 우리 반도체 관련 업체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젊은 세대들을 위한 수많은 일자리도 한순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다.
반도체를 30여 년 가까이 연구하고 있는 전문가, 대학에서 젊은 세대를 교육하고 있는 학자, 그리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반도체 업체들이 내가 태어난 이 땅에 있다는 것에 항상 자부심을 가졌던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를 제3자에게 공개하는 문제는 고용부·산업부 또는 사법부가 개별 사안으로 판단하지 말고 국가 반도체산업 경쟁력 및 이를 통해 젊은 세대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그리고 고용노동 문제까지 고려한 틀 안에서 여야 정치권과 현 정부가 통 큰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