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임승수 동문, 허세로 읽었던 ‘자본론’ 최고의 충격을 맛보다(한겨례,2018.07.22)
‘‘원숭이도 이해하는…’ 작가 임승수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해설서로
경제학·철학·변혁운동 3부작 완성
“마르크스의 세계관 지금도 유효”
“욕망 억누르기만 하면 괴물 돼”
카드 할부로 국외여행을 다니는 와인 애호가 마르크스주의자. 서울대 공대 석사 출신의 생계형 ‘진보 실용서’ 저자. 쉽게 이어질 것 같지 않은 단어들로 이뤄진 이 문장은 임승수(43) 작가를 설명하는 데는 아무 모순이 없다.
그는 지난 4월에 출간한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생계형 마르크스주의자의 유쾌한 자본주의 생존기>라는 책에서 부부가 모두 전업작가로 살면서도 카드 할부로 두 딸과 함께 국외여행을 다니고, 와인을 즐기며 행복한 삶을 사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인간은 식욕과 성욕을 가진 동물이거든요. 사람들의 동물적 습성을 부인하는 도덕주의는 성공할 수 없다고 봐요. 자기가 만든 속박 때문에 욕망을 억누르다가 이것이 썩어서 괴물이 된 사람들을 이번에 우리가 많이 봤잖아요. 마광수 작가 말대로 상수도가 있으면 하수도도 있어야 돼요. 욕망을 가진 나란 존재를 받아들이고, 술로든 여행으로든 욕망을 적절히 해소하고 분출해줘야 건강한 사람이 되고, 사회운동을 하더라도 길게 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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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해설서로
경제학·철학·변혁운동 3부작 완성
“마르크스의 세계관 지금도 유효”
“욕망 억누르기만 하면 괴물 돼”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임승수 작가가 1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자신의 책을 들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임 작가가 이런 독특한 삶의 길로 빠지게 된 계기는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제공했다. 서울대 전기공학부 학부생 시절 ‘대학생이라면 마르크스는 읽어야 하지 않나’라는 ‘허세’로 집어 들었던 <자본론>은 그에게 “활자가 개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충격”을 선사했다. 이후 대학원에서 반도체 소재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고, 벤처 기업에서 5년 간 연구원으로 일하다 2006년 회사를 그만뒀다.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진보 정치 운동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해에 첫 책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를 내서 본격적으로 글 쓰는 길에 접어들었다. 지금은 매년 150~200차례의 강연을 다니는 일이 그의 주 수입원이다.
까다로운 <자본론>을 읽으며 고생했던 경험을 살려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2008년)은 그의 대표작이 됐다. 지금까지 4만권 넘게 팔려나갔고 개정판도 냈다. 2011년엔 중국어판도 나왔고, 최근엔 그가 사비 800만원을 들여 영어로 번역해 영어권 출간도 진행 중이다. 1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어떤 분들은 제 책을 읽고 나서 ‘난 이 책도 이해 못 했는데 그럼 내가 원숭이보다 못한 거냐’고 농담 반 진담 반 말씀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럼 ‘책 팔아먹으려고 제목을 좀 세게 달았어요. 죄송합니다’고 하죠.(웃음)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제목을 고민하다가 어떤 만화책 속에 등장하는 ‘원숭이도 이해하는 물리학’이란 책 제목에 영감을 받았어요. 죽어가는 책도 다시 살릴만한 제목 아닌가요? 저는 좀 있어 보이는데 전혀 관심이 없으니 쓸 수 있는 제목이었죠.”
이어서 그는 2010년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을 냈고, 이번엔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을 냈다. 이로써 각각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운동을 다룬 시리즈 3부작을 일단락지었다. 이번에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은 임 작가가 40대가 돼서야 <공산당 선언>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서 느낀 짜릿함을 20대 독자들도 느낄 수 있도록 쉽게 쓴 책이다. 마치 동아리 선배나 과외교사가 설명해주는 것처럼. “마르크스가 쓴 글 중엔 지금으로 보면 잘못 쓴 부분도 있죠. 하지만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이후 등장한 포스트모던 사상은 현미경으로만 보느라 망원경으로 보지는 못하고 있어요. 마르크스가 꿰뚫은 자본주의 착취구조나 역사 유물론 같은 세계관은 지금도 유효할 뿐 아니라 더 절실합니다.”
마르크스주의자를 ‘천연기념물’이라고 부르는 이 시대에 마르크스주의자는 무엇을 믿을까. “전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조직된 사회가 올 것이라고 믿어요. 다만, 어떤 방식으로 이행해갈지는 다양한 방법이 가능하겠죠.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선 폭력으로 사회를 전복해야 한다고 썼어요. 그 당시는 민주적 선거도 없었고, 사회 변혁의 가능성 자체가 보이지 않는 사회였거든요. 사회 지도 계급을 교체하기 위해선 폭력적인 방법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현대에는 선거가 보편화되면서 얼마든지 대중들의 열망을 힘입어 평화적으로 권력을 잡아 민주적인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그는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합당해서 통합진보당으로 바뀔 때 당을 나와 지금은 당적이 없는 상황이다. “진보 진영이 쪼개진 상황에서 특정 정당에서 활동하는 것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어떤 당에 가입하면 다른 쪽 사람들은 그때부터 제 말을 듣지 않을 겁니다.”
그와 같은 좌파는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볼까? “저는 문재인 정부가 잘 되길 바라는 사람이에요. 처음에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난다던지 이런 모습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최근의 행보를 보면 개혁성이 퇴색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하락기에 들어서니까 정부가 당혹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재계 쪽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이런 부분은 우려스럽습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임승수 작가가 1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자신의 책을 들고 있다. 임 작가는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에 이어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으로 마르크스 3부작을 마무리했다.
그는 앞으로도 와인 입문서와 시간, 민주주의, 한국 경제사를 쉽게 풀어낸 책 등 다양한 “진보 실용서”를 준비하고 있다. “책은 그 책을 냈을 때만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만들어줘요. 이번에 나온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이나, 영어권에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 나왔을 때 벌어질 일들이 어떻게 제 삶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줄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