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의 폭염이 계속되면서 정부가 7, 8월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민의 기대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면서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여기에 폭염의 상시화 가능성마저 대두되면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전력 수급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계속되고 있다.
13일 만난 전력산업 전문가 문승일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57·전 기초전력연구원장·사진)는 이에 대해 “과장된 우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현재 전력수급 상황을 고려할 때 문제 발생 가능성은 낮다. 다만 피크(최대 전력 수요) 때가 문제인 만큼 이에 대한 대책만 잘 세우면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피크 때의 예비전력 확보용 발전소 건설에 매달릴 게 아니라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크 때 전력 공급을 위해 발전소 건설에 매달리다 보니 일부 발전소는 여름 한 철만 가동되는 경우도 있어 이런 낭비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에너지저장기술 활용 외에도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과 전력망을 연결해 피크 때 이들 나라에서 전력을 사오는 방안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특히 “동북아 전력망을 연결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에도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또 “ESS 구축 계획도 없이 에너지 전환만 얘기하는 것은 난센스”라며 현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우선 정책도 비판했다. 디젤기차에서 고속철로 바꾸겠다면서 고속철도망 등 인프라 건설도 하지 않고 기관차만 교체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ESS는 전기를 덜 쓸 때 저장했다가 피크 때 활용하는 장치. 현재 한국의 ESS 기술은 세계 정상급으로 평가받는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는 일조량이나 바람의 세기 등에 따라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아 ESS가 필수적이다.
문 교수는 또 “지난해 전체 전기 소비 가운데 가정용 비중은 13%에 불과했다”면서 “가정용 누진제를 당장 폐지해도 문제없다”고 지적했다. 또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불가피론도 펼쳤다. 이전 정권들에서 추진해 온 산업용 전기요금 현실화를 지속해야만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 구조 조정도 이뤄지고 에너지 분야에서 신산업도 발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의 전기요금은 1MWh당 산업용이 95.7달러로 가정용(119.1달러)보다 싸다. 또 대부분의 선진국보다 낮다. 독일(140.8달러) 프랑스(105.8달러) 일본(163.1달러) 영국(125.2달러) 등은 모두 100달러를 훌쩍 넘는다. 문 교수는 “지난해 전체 제조업 제조원가 중 전기요금 비중이 1.5%에 불과해 산업용 요금을 인상한다 해도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또 “전기로와 시멘트산업의 상위 20개 기업을 위해 발전설비 100만 kW의 원전 5기 정도를 지원하고 있다”며 이의 수정을 촉구했다. 한국기간산업협의회에 따르면 제조원가 대비 전기요금 비중이 가장 높은 업종은 철강산업(전기로공장)과 면방산업으로 25%를 차지한다. 이어 시멘트산업(22.0%) 제지산업(16.2%) 석유화학산업(11.0%)의 순으로 뒤를 잇는다. 그는 “언제까지 이 기업들을 끌고 갈 수는 없다”면서 “이들을 위한 원전 건설비용 25조 원을 기업 구조조정과 새로운 산업 투자비용으로 활용하는 게 국가 경제에 더 낫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