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정보공학부는 2012년 개명 전까지 '전기공학부'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전기공학부의 뿌리는 1991년 2학기, 전기공학과, 전자공학과, 제어계측공학과가 자발적으로 통합을 결정한 데에 있습니다. 이는 한국 교육사에 길이 남을 혁신적 결정이었으며, 당시 서울대학교가 소규모 학과의 통합을 추진하고자 했음에도 이루지 못했던 것을 세 학과가 외부의 지원 없이 스스로 이루어 낸 것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세 학과의 모든 교수님은 학문과 교육의 미래를 내다본 선구자들이며,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당시에는 '학부제'에 대한 법적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 않았지만, 대학이 그 도입을 강력히 희망하던 시기였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1992년부터 '전기·전자·제어계측 학과군'이라는 명칭으로 학생을 선발하기 시작했으며, 학생들 사이에서는 약칭으로 '전·전·제'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1995년부터는 정식 명칭인 '전기공학부'로 학생을 선발하였고, 이로부터 정확히 3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전기·정보공학부의 창립 30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기원을 포함하면 올해는 통합 33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당시 전기공학과는 고 한송엽 교수님, 전자공학과는 민홍식 교수님, 제어계측공학과는 제가 대표하여 통합 논의를 이끌었습니다. 그 협의의 일원이었던 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는 이러한 뜻깊은 결정을 역사적으로 기록하고자, 서울대학교 명에 교수회보 2019년 제15호에 "전국대학 학부제를 이끈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의 자발적 통합"이라는 글을 기고한 바 있습니다. 전기공학부는 통합 이후 서울대학교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학부가 되었고, 단과대학들과 비교해도 상위 여덟 번째에 해당할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학부제를 도입함으로써 서울공대에서는 기계계열, 화학계열, 재료계열, 토목계열에서 학부제 바람이 불었으며, 타 단과대학, 더 나아가 전국 대학으로 확산되어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전기공학부의 선도적 결정이 그만큼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습니다.
특히, 통합 이전부터 추진되었던 여러 대형 연구 시설-반도체공동연구소(1985년 설립, 1988년 준공), 기초전력공학공동연구소(1988년 설립, 1989년 준공), 자동화시스템공동연구소(1988년 설립, 1991년 준공), 뉴미디어통신공동연구소(1991년 설립, 1995년 준공), 등-은 전기·정보공학부의 연구 인프라로 통합되어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역량을 갖추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1992년 정부의 공대 두 배 확충 정책에 따라 전기·정보공학부 학생 수는 최대 250%까지 증가하도록 계획되었으며, 1996년에는 입학생 수가 295명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서울공대는 이에 대응하여 우선 연면적 12,420평 규모의 신공학관 301동을 1996년 2월에 완공하였으며, 전기·정보공학부는 먼저 학부로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건물의 실질적인 주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연구 환경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전기·정보공학부가 통합된 후 지난 30년간 우리나라 산업은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산업, 정보통신기술(ICT), 전기에너지 시스템 구축, 그리고 로봇 및 생산 시스템 산업 등에서 우리 전기·정보공학부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그 공로는 산업계와 학계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중요하게 예상되는 미래 반도체 기술, 미래 정보통신 기술, 미래 전기에너지 기술, 인공지능(AI) 등에서도 우리 학부가 최고의 인력을 교육하고, 최고의 기초연구를 수행하고, 필요에 따라 산업 응용, 혹은 혁신적인 벤처 창업도 이루기를 바랍니다.
우리 학부가 다루는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기는 어렵지만, 특정 분야에서 개별 교수님들의 연구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성과들을 적극 발굴하고 지원하며, 스타 교수를 육성하고 홍보하는 체계가 필요합니다. 과거 우리 학부에 대한 외부 평가에서는 전반적으로 우수하지만 스타 교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던 만큼, 학부 차원에서 전략적 지원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스타 교수 여러 명이 존재하는 학부는 자연스럽게 명문 학부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학부에서는 매년 말 '올해의 10대 업적'을 선정하여 발표하는 전통을 마려해 주시길 바랍니다. 비록 평가가 완벽할 수는 없더라도, 학부의 방향성을 구성원에게 명확히 전달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는 개별 연구소에도 확대 적용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운영했던 연구실과 센터에서도 이 방식을 적용하여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얻은 바 있습니다.
국가 기술혁신 체계에는 학계, 연구계, 산업계 간의 기술 교류와 표준활동을 다루는 학술단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학부가 다루는 분야에서 미국의 전기전자학회(IEEE)와 같은 큰 규모의 학술단체가 필요합니다. 전기·정보공학부가 통합 5주년이던 2000년에, 대한전기학회와 대한전자공학회는 완전 통합에 구체적으로 합의했습니다. 그때 저는 전기학회 차기 회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결되지 못했습니다. 이제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비전 아래 학술단체 통합을 다시 추진하는데 우리 학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를 기대합니다. 이는 우리나라 기술혁신 인프라의 도약을 견인할 수 있습니다. 전기·정보공학부의 30주년을 맞아, 통합 당시의 벅찬 감격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앞으로도 우리 학부가 세계 일류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이끄는 주역으로 더욱 우뚝 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