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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이공계의 경쟁력, 김성철 교수(문화일보 2009. 1. 15)

2009.01.28.l 조회수 20668
새해가 시작된 지 보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새해의 밝은 사회 분위기는 간데없고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로 우울하게 가라앉아 있다. 요즘처럼 착 가라앉은 사회 분위기는 경제적인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그보다는 하면 된다는 정신적인 믿음의 약화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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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서울대 교수]


지금보다 훨씬 더 춥고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도 많은 형제자매가 미래에 대한 기대로 희망차게 살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 또는 둘인 자녀들이 부모의 과보호로 삶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고, 혼자 스스로 무엇을 성취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경우가 매우 드물다. 과거와 달리 대학 정원이 대학 진학을 원하는 수험생보다 많으니 누구나 대학을 쉽게 간다. 대학의 경쟁력 차이를 서열화라고 비난하는 일부 사회 일각의 정서로 인해 굳이 좋은 대학에 가려는 노력이 필요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미적분을 못하는 공대생들처럼 대학 공부에 대한 준비가 덜된 대학생이 많다는 교수들의 푸념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요즘은 과거처럼 과학자가 되겠다는 청소년이 매우 드물다. 굳이 과학자가 되기 위해 힘들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들 생각한다.

청년 실업자가 많다고 하지만, 커피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것은 좋아해도 산업공단의 생산직은 싫어한다고 한다. 오늘날 한국의 물질적 풍요로움의 근원이 산업단지의 국제 경쟁력에 있음을 모두가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산업 경쟁력은 거저 얻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1970, 80년대에 수많은 우수 인재가 이공계로 진학해 우리나라의 산업 경쟁력을 지금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결과다.

혹자는 대학 교육이 부실하다고 비난하지만 오늘날의 경쟁력 있는 이공계 인력을 양성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지금의 공과대학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세계 13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공대들도 10위권에 들어야 한다고 사회는 몰아붙인다. 경제대국인 한국의 정치와 행정 경쟁력은 몇 위이며, 언론 미디어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인지 필자는 모른다.

그러나 한 예로 서울대의 이공계 연구비 규모가 경쟁 외국대학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하면서도 연구 성과는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수 기준 세계 24위임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질책하는 것이 우리 사회라는 것도 안다. 혹자는 논문 수만 많았지 논문의 질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우리 사회가 대학의 연구·개발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 20년 남짓하다는 사실을 알면 경이로운 성취라고 세계의 대학들이 놀라는데, 유독 우리나라 정부와 언론은 교수들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느라 교수들이 혼신의 노력을 다해 오늘의 성과를 이루고 있을 때 외국 대학에 재직하며 한국으로 오기를 싫어하다 뒤늦게 귀국한 어느 대학 총장은 국내 대학교수들이 국제 경쟁력이 없다고 몰아붙인다.

연봉이 4분의 1로 줄어드는 것을 알면서도 필자가 한국의 대학으로 직장을 옮긴다고 했을 때 미국의 직장 동료들이나 지도교수는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기꺼이 귀국하여 연구와 교육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듯이 다른 교수들도 똑같이 노력했을 것이나, 그 총장에게는 무능한 교수들로만 보였을지도 모른다. 연구비 지원은 늘리지 않고 교수들의 승진을 무기로 아무리 채찍을 가해도 이제는 발전의 한계에 왔다는 생각마저 든다.

언젠가 다른 대학의 공대 수석 졸업생이 서울대 의대로 편입한 일로 사회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그 학생의 답변이 선배들이 대학원 오는 것을 말렸다고 한다. 그 선배들이 느낀 것이 열심히 연구만 하고 노력에 대한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공계 교수들의 모습에 좌절한 결과가 아니기를 바란다.

그러나 지인들의 자녀들이 최근 서울대 공대로 진학한 것을 보면 아직 희망은 있다. 이공계 전문가들을 채찍으로 몰지만 말고 충분한 연구 지원을 하고 나서 성과를 물으면 한국의 미래 경쟁력은 밝을 수 있다. 올해에는 마음껏 연구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한 해가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