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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경제한파의 최일선 기술인력(문화일보 2009.2.5)

2009.02.06.l 조회수 20764
전대미문의 금융위기로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이 본격적인 감원을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한국의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공기업들은 이미 대대적인 감원 인사를 단행했으며 민영 대기업도 신규 채용과 임원수를 줄인다는 기사가 매일 쏟아진다. 중소기업도 그동안 축적한 기술경쟁력으로 용케 버티고 있지만 세계적인 경기 둔화를 피해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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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서울대 교수]

모두가 어려워지는 이때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는 구호가 요란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연구인력 구조조정이 가장 먼저 이뤄지며 연구·개발 자금도 줄이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도 조기 집행한다는 보도가 있지만 대대적으로 늘린다는 소식은 듣기 힘들다. 경기 부양을 위한 예산 배정이 급해 연구·개발 예산 확대는 힘들어 보인다.
이처럼 금융위기가 바로 연구·개발비 감소로 연결되니 필자로서도 연구비 확보가 걱정이지만 더 큰 걱정은 앞으로 닥칠 국가적 실업난이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처지에서는 졸업생들의 진로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미취업도 심각하지만 기업 구조조정이나 파산으로 인해 생기는 현직 전문가들의 실직 문제는 더 심각하다. 그들 가운데는 오늘의 한국의 경제 성장을 견인했던 고급 기술인력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에 더욱 안타깝다.

그들은 바로 필자의 선배·동료·후배들로, 일반인들이 기피하는 어려운 공학 과목을 도 닦는 마음으로 묵묵히 터득하고 세상에 나와 오늘의 한국 발전에 한 몸 던져 기여한 소중한 국가적 자산들이다. 이들 개인의 실업 문제도 안타깝지만 앞으로 다가올 국가적 후유증이 더 큰 걱정이다. 경영자나 정책 당국자들은 기술 인력을 언제든지 쉽게 양성하거나 외국에서 구해 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생각과 많이 다르다.

기술인력은 현업을 떠나면 급격하게 발전하는 기술 변화를 따라잡기 힘들어져 경쟁력이 쉽게 사라지고 회복이 어렵다. 더구나 지금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진학 선호도를 볼 때 과거처럼 최고의 두뇌가 이공계로 진학해 고급 기술자가 되는 경우는 턱 없이 적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고급 기술 두뇌의 신규 공급이 부족하면 기존 고급 기술 두뇌의 사장을 막아야 하는데 개별 기업에 맡기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경쟁국에 취업해 그동안 쌓아올린 기술 노하우가 그대로 경쟁국에 전달돼 국내 산업 경쟁력을 위협할 때다. 이미 이런 사례가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됐지만 앞으로 더 많이 발생할 것이다. 열심히 기술자의 외길을 살아오며 국가와 기업을 위해 일해오던 사람을 해고하고서 외국 기업에 재취업을 하지 않는 애국심을 요구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 염치없다.

사실 우리나라는 기술인력을 포함한 전문가들의 조로 현상이 너무 심하다. 필자가 과거에 근무했던 미국의 민간기업 연구소에서는 60세를 넘기고도 연구·개발 업무를 수행하는 연구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떤 분은 70세까지 정규직으로 일하다 은퇴한 뒤 계약직으로 계속 같은 부서에서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능력을 갖춘 전문가의 경우 본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현업에서 일할 수 있는 제도와 사회적 분위기를 갖춘 곳이 미국 사회다. 지금의 미국경제가 지나치게 금융산업을 강조하고 기술 기반의 산업을 경시해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그들의 연구·개발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국가적 기술 잠재력은 아직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우리의 경우 구조조정의 첫 번째 고려 대상이 연령이라고 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나이가 되면 후배들을 위해 용퇴하는 일을 미덕으로 여기는 곳이 한국 사회다. 아까운 인재가 용퇴해 어떤 일을 하는지 필자는 모른다. 그러나 인재가 가지고 있던 전문성을 발휘할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나이와 상관 없이 전문가들의 능력이 낭비되지 않고 제대로 활용될 국가적 시스템을 마련할 때다.

[[김성철 / 서울대 교수·전자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