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시론] 달리는 발전소 전기차로 에너지난 대처를 (중앙일보, 2015.04.06)
[문승일 교수]
온 세계에 전기차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IT 업계의 대표 주자인 구글과 애플에서 전기차를 이용한 자율주행차량 사업에 뛰어들었다. 미국의 대표적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는 보유하고 있는 전기차 관련 특허를 공개하며 전기차 시장을 넓혀 가려 하고 있다. 지난달 제주에서 열렸던 국제 전기차 엑스포에는 7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는데 여기에 전시됐던 중국산 전기차는 그 성능이 예상을 뛰어넘었다.
전기차를 도입하기 위한 도시들 사이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이달고 파리 시장은 대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020년까지 파리 시내에서 경유차를 퇴출시키고 그 대신 전기차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 또한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전기차를 대량 보급하고 전기차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충분한 수의 충전소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전기차가 늘면 발전소를 줄일 수 있다. 대체로 전기 사용량은 낮에는 많고 밤에 적다. 정전 없이 전기를 공급하려면 전기 사용량 피크 시간에 필요한 전기보다 더 많은 전기를 공급할 수 있을 만큼 발전설비를 갖춰야 한다. 설사 평소 전기 사용량을 줄였다 하더라도 피크 시간에 줄이지 못한다면 발전소를 줄일 수 없다. 하지만 밤에 전력을 저장해 두었다가 피크 시간인 낮에 저장된 전기를 꺼내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지금보다 더 적은 발전설비로도 문제 없이 전기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전기차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하기에 제격이다. 전기차에 내장된 배터리는 전기를 저장한다. 대부분의 전기차 사용자는 전력 공급에 여유가 있는 밤에 충전해 전기를 저장해 두었다가 낮에 이 전기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이때 주차돼 있는 전기차에 저장된 전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피크 시간 동안에 전기차는 발전소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또 야간에는 전기요금을 싸게 하고 피크 시간엔 비싸게 하는 변동요금 제도를 도입한다면 전기차 사용자는 낮은 가격으로 충전했던 전기를 비싸게 되팔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전기차가 달리는 발전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서울시내 공기오염의 주범은 자동차다. 중국으로부터 날아오는 미세먼지도 문제지만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매연이야말로 시민들의 건강을 직접 위협하는 주요인이다. 그간 서울시에서 천연가스버스를 도입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확연히 느낄 수 있을 만큼 미세먼지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건강을 해치는 초미세먼지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서울시는 초미세먼지를 20% 정도 줄이려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여기에 전기차가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기존의 자동차는 달릴 때는 물론 교통체증 때문에 거북이걸음을 할 때에도 배기구를 통해 매연을 뿜어낸다. 그러나 전기차는 서 있을 때나 달릴 때나 매연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전기차는 소음도 공해도 없이 달리는 굴뚝 없는 발전소라 할 수 있다.
전기차는 신재생에너지 보급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불규칙한 자연에너지를 이용해 발전을 하게 되면 필요할 때에는 전기를 생산하지 못하다 정작 필요하지 않을 때는 초과 생산하는 경우가 생긴다. 전기차를 활용해 남는 전기를 저장하도록 한다면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효율을 극대화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서해 앞바다에 설치된 대규모 해상풍력발전기와 서울시내를 달리는 전기차가 상생의 관계를 가지게 될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전기차의 성능은 매우 빠르게 개선됐다. 한 번 충전해 200㎞를 넘게 달릴 수 있게 되었고 승차감은 기존의 자동차를 훨씬 앞선다. 그러나 아직 전기차 사용자는 큰 불편을 겪고 있다. 가격이 기존의 자동차에 비해 두 배가량 비싸고 충전시설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다. 현재 정부는 전기차 구매자에게 차량 가격의 절반가량을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한 해 보급되는 전기차는 수천 대가량에 머물고 있다.
서울시는 충전 설비를 단기간에 구축하고 전기차를 대량 보급하는 정책으로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깨야 한다. 무엇보다 서울시내 어디에서든 5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도록 적재적소에 충전소를 설치해야 한다. 다행히 서울시는 휴대전화 확대로 무용지물이 된 공중전화부스를 전기차 충전소로 바꾸는 사업을 시작했다. 충전하기가 편하고 전기료 혜택이 있어야 전기차의 수요도 확대될 것이다.
또 공공기관의 자동차부터 전기차로 바꾸고 버스와 택시도 전기차로 점차 교체할 필요가 있다. 대학 캠퍼스나 산업단지 같은 곳에 전기차를 우선 보급한다면 많은 시민이 전기차를 직접 타보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연간 수만 대의 전기차가 팔리는 시장이 만들어진다면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가격이 떨어지고 보조금에 의존하지 않고 자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에너지를 많이 수입하는 한국으로선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는 것이 어떤 에너지 절감정책보다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문승일 서울대 교수 전기정보공학부
중앙일보 201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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