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이종호S 교수, 차상균 교수, '산업을 바꿀 기술' 몰라보고 걷어찬 한국(조선,2016.04.20)
['made in Korea' 신화가 저문다] [2] 단기성과 집착하는 기업들
원광大팀의 3차원 반도체 기술, 삼성전자는 거부… 인텔이 '덥석'
스마트폰 핵심기술 되자 "아차"… 제품 양산까지 인텔에 4년 뒤져
국내서 외면한 빅데이터 기술, 獨기업이 사들여 1조3000억 대박
서울대 첨단 지하유전 탐사기술, 프랑스에 고작 14억원에 팔려
스마트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구글 아닌 삼성전자에 첫 제의
지난해 2월 삼성전자는 "'3차원 반도체(FinFET·핀펫)' 기술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용 반도체 양산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반도체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한 기술적 성취"라는 자평도 했다. 3차원 기술로 만든 반도체는 평면 구조의 기존 제품과 비교해 성능과 에너지 효율이 훨씬 뛰어난 데다 칩의 크기도 극소화할 수 있다. 삼성의 스마트폰을 더 얇게 만들고 배터리 사용 시간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핵심 기술이다. 하지만 당시 삼성의 핀펫 반도체 생산은 경쟁사인 인텔보다 4년이 늦은 것이었다.
사실 삼성전자는 오래전에 이 기술을 선점할 기회가 있었다. 15년 전인 2001년 10월 이종호 당시 원광대 교수가 경기도 기흥의 삼성 반도체 사업장을 찾아와 자신이 개발한 '3차원 반도체 양산(量産) 기술'을 공개했었다. 그는 삼성전자 임원들 앞에서 "현재 대세인 2차원 평면 소자로는 고성능 반도체 개발에 한계가 있다"면서 "소자의 구조를 3차원으로 바꾸면 소비 전력과 제품 크기를 줄이면서 성능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참석자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이 교수가 "지금 3차원 반도체 기술에 투자하지 않으면 늦는다"고 호소했지만 참석자들은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 교수는 결국 1년 4개월 뒤인 2003년 2월 인텔(Intel)에 이 기술을 제안했고, 이후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이 회사에 기술 이전을 했다. 인텔은 2011년 세계 최초로 핀펫 반도체 양산에 성공,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이라는 위치를 공고히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당시 우리도 3차원 반도체 기술 개발에 나섰던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게다가 당시 세계 반도체 업계가 공급 과잉으로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던 상황을 감안하면 수천억원의 개발 비용이 드는 기술을 선뜻 수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표 기업들은 과감한 기술 투자를 외면하면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가 될 기회를 번번이 놓치고 말았다. 이종호 서울대 공대 기획부학장은 "당시 한국 대기업의 시스템에선 누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마찬가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2위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인 독일의 SAP는 2011년부터 모든 소프트웨어를 '하나(HANA)'라는 빅데이터(대규모 데이터) 처리 기술에 기반해 만들고 있다. 이 기술은 기존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보다 읽고 쓰는 속도가 수백배 이상 빠른 메모리 반도체에 대부분의 데이터를 올려놓고 처리한다. 덕분에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속도로 대용량의 데이터 처리가 가능해졌다. 독일 SAP가 지난해 '하나'를 적용한 빅데이터 처리 소프트웨어로 벌어들이는 돈은 10억유로(약 1조3000억원)가 넘는다. SAP에 이렇게 큰 수익을 안겨준 기술 역시 한국에서 태어났다. 지난 2000년 서울대 차상균 교수가 연구실 대학원생들과 함께 데이터베이스(DB) 처리 기술을 연구하다 개발했다.
◇당장 돈 안 되면 관심 없는 한국
'하나' 역시 처음부터 독일 SAP로 넘어가지 않았다. 차 교수는 당시 이 기술을 국내에서 상용화하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국내 대기업을 접촉하기도 하고, 직접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을 만들기도 했다. 차 교수는 "당시 한국에는 'IT 붐'이 일고 있었지만, 다들 당장 돈이 되는 기술에만 관심이 있었다"면서 "'하나' 같은 소프트웨어 기술에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나 기업들은 없었다"고 했다.
결국 이들은 2002년 미국 실리콘밸리로 떠났다. 여기서 SAP를 만났다. SAP는 한국에서 온 생소한 기술에 기대 이상의 관심을 보였다. 머지않아 빅데이터 시대가 도래하면 기존 기술보다 훨씬 빠른 데이터 처리 기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예측했던 것이다. 이 기술은 결국 SAP로 매각됐다.
세계 최대의 석유 기업 중 하나인 프랑스 토탈(TOTAL)이 활용하는 첨단 지하 유전 탐사 기술도 우리가 아깝게 놓친 토종 기술이다. 이 기술은 서울대 신창수 교수팀이 2008년 개발했다. 지하에 매장돼 있는 원유를 지진파(地震波)를 활용해 찾는데, 비슷한 원리의 기존 기술보다 해상도(解像度)가 월등히 높아 유전 탐사의 성공률을 크게 높였다.
신 교수팀은 당시 국내 몇몇 에너지 기업에 이 기술을 이전하는 방안을 타진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에너지 업체들 중에서 직접 석유를 찾아 시추하는 곳은 드물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이 기술은 2010년 125만달러(약 14억원)의 기술 사용료를 받고 프랑스 토탈로 이전됐다. 현재 토탈은 이를 통해 중동·북해 등에서 지하 지대를 탐사하고 있다.
◇한국이 거절, 구글로 간 '안드로이드'
넝쿨째 굴러 들어온 해외 신기술을 차버린 사례도 있다. 외신에 따르면 스마트폰용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OS)를 개발한 앤디 루빈(Rubin)은 2004년 안드로이드 OS를 팔기 위해 삼성전자와 접촉했다. 루빈은 한국을 찾아와 "전 세계 스마트폰 제조사에 무료로 운영 체제를 제공해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사업 전략을 소개하면서 제휴와 투자를 요청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임원들은 그의 제안을 뿌리쳤다. "수천명의 우리 회사 엔지니어가 못하는 일을 직원 6명인 당신 회사가 한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에서 거절당한 안드로이드는 2주 뒤 구글에 5000만달러(약 567억원)에 인수됐다. 안드로이드 역시 삼성전자가 했다면 글로벌화에 성 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소니도 자사 제품을 글로벌화하려 했다가 수없이 실패했었다. 국내 스마트폰 업체 고위 관계자는 "작은 '나사' 하나 필요 없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사업은 현재 이익률이 70%가 넘는다"면서 "당시 한국이 안드로이드를 인수했더라도 반드시 성공했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최소한 지금처럼 구글에 완전 종속되는 상황은 피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