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차상균 교수, 4차산업혁명 대비 '지뢰밭 규제' 해체해야(지디넷코리아,2017.03.22)
"지금 우리 사회는 한 마디로 얘기하면 몸은 고등학생이 됐는데 초등학생 옷을 입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외형적인 성장 만큼 사고력이나 시스템이 따라주지 않는 거죠. 4차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사회시스템 전반의 대변혁이 필요합니다."
"과거 제조업 중심 성장 한계에 부딪힌 한국은 일자리 부족으로 청년 실업 같은 사회경제적 문제가 심각합니다. 산업혁명이 급격한 일자리 변화를 가져왔는데 교육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미스매치’로 청년 구직자에게 몇 십 만원의 위로금 수준의 지원을 넘어선 근본적인 답을 찾아야합니다."
4차산업혁명은 기업들의 흥망성쇠와 산업지형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제도와 문화, 일상생활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지난해 '알파고 쇼크' 이후 인공지능(AI)이 인간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고, 테슬라 차량 자율주행 테스트 중 발생한 사망 사고는 국내 기업들과 규제 당국에도 고민 거리를 안겼다. 기업들의 일사분란한 대응과 함께 사회 전반적인 개혁의 필요성이 지적되는 이유다.
4차산업혁명은 기업들의 흥망성쇠와 산업지형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제도와 문화, 일상생활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지난해 '알파고 쇼크' 이후 인공지능(AI)이 인간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에 맞는 4차산업혁명 모델 찾아야
4차산업혁명의 모범 사례로 국내에서는 주로 우리와 유사한 산업 구조를 가진 독일이 집중적으로 언급된다. 독일은 물리와 화학 등 기초과학에 강점이 있는 나라로 자동차, 화학, 제약과 같은 제조업이 발전한 반면 이같은 산업 구조와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실리콘밸리가 선도하는 소프트웨어, 서비스 기반의 디지털 혁신은 미국에 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더스트리4.0’은 독일 정부가 독일의 강점인 제조업을 기반으로 디지털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다.
중국은 실리콘밸리와 독일의 모델을 모두 흡수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저렴한 노동력으로 세계의 공장 위상을 확보한 중국이 제조업을 고부가 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발표한 ‘중국 제조 2025’ 계획은 반도체, 바이오, 전기차, 로봇, 고속철도, 우주항공, 해양조선 등 모든 산업 분야를 망라하는 정부 주도의 산업 고도화 계획이다. 한편으로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의 앞글자를 따 지칭하는 말)로 대표되는 성공한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적 자세와 자국 기업에 대한 지원으로 디지털 혁신 경제를 빠르게 키우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아메리카 퍼스트’ 전략은 이러한 '차이나 퍼스트'에 대한 대응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4차산업혁명 분야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기 보다는 실리콘밸리 혁신 기업들을 비롯해 GE, IBM, 로크웰, 시스코 같은 민간기업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자동화와 로봇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데다 일본 특유의 모노즈쿠리 정신이 더해져 자동화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수준의 다소 단편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다.
한석희 한국인더스트리4.0협회 사무총장은 “서구에서는 긴 시간 동안 발생할 현상과 이슈에 대해 갑론을박하며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반면 한국 정부나 관련 기관에서는 단기간에 우르르 몰려가 속전속결로 가시적인 성과를 우선 내어놓고 그 다음 논의를 진행하는 특징이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생긴 일종의 환상 때문에 인더스트리4.0을 처음 시작한 독일조차 종종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편협하지 않고 광범위한 4차산업혁명을 논의하는 특징이 있고 재능있고 똑똑하며 경험이 있는 인재들이 많은 것이 장점"이라면서 "이들의 시각이 통일되고 시너지를 내지 않는다면 상당히 많은 시간적 비용적 투자가 더 요구될 지도 모르는 만큼 겉으로 나타난 현상만을 보고 갑론을박을 하다가 마는 수준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해관계를 떠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4차산업혁명 대응의 '골든 타임'으로 꼽히는 향후 3~5년 간의 시기가 국내에서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는 시기와 맞물리는 만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한 방향으로 시너지를 내기 위한 거버넌스 형태의 논의 구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국가 차원에서 대규모 연구개발(R&D) 투자가 수반돼야하는 IT 업종에서는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차상균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미국은 국가 연구개발(R&D) 투자 방향 결정이 관료나 정치권의 간섭으로부터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디지털 혁신 씨앗을 키우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면서 “정당 정치가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나라는 5년 단임제 하에서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국가 R&D 기조가 바뀌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런 체제에서는 대부분의 과제들이 관료나 정치권의 개입에 의해 추종자 관점의 단기 과제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연구비가 2~3년 내 가시적 성과를 내야하니 임팩트가 큰 장기 과제는 포기하게 되고 단기 과제를 이어가는 식으로 하다보면 연구비를 연속해서 따기 위해 성과를 과대 포장하거나 관료나 정치권에 줄을 대는 문제가 생긴다"면서 "이런 체제에서는 글로벌 시장 혁신을 이끌만한 씨앗들이 나오고 힘들다”고 말했다.
■‘혁신의 씨앗’ 심는 창업, 스마트하게 장려해야
전문가들은 4차산업혁명 시대 대응을 위해 창업을 장려해야한다고 강조하면서도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스마트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나의 예로 대학 중심의 창업이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학 벤처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연구한 결과를 바로 시장에 내놓으면 대기업이 이같은 벤처를 인수하는 형태가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아마존이 알렉사를 출시하자 애플이 지난해 8월 시리를 강화하기 위해 2억달러에 인수한 딥러닝 플랫폼 벤처 ‘튜리(Turi)’는 2013년 5월 워싱턴대 카를로스 구에스트린 교수가 창업한 업체로, 이 회사의 뿌리는 구에스트린 교수가 2009년 시작한 고성능 분산 그래프 분석 플랫폼 연구다.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에 4:1로 승리하며 전 세계에 인공지능 쇼크를 안겨준 구글 알파고는 영국 런던대(UCL) 출신들이 5년 전 창업한 딥마인드에서 나왔다. 구글도 1993년 미국 정부의 연구비 지원 기관 국방성, 연구재단, NASA가 공동으로 6개 대학에 지원한 디지털 라이브러리 프로젝트에서 태동했다. 세계 최대 민간 상업용 드론 제조업체 DJI는 2005년 홍콩과기대 박사과정생이던 프랭크 왕과 지도교수인 리저샹 전기컴퓨터공학과 교수가 공동 창업한 회사다.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차상균 교수도 대학 창업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지난 2000년 서울대에 1호 글로벌 스타트업인 티아이엠시스템을 설립해 2005년 세계적 소프트웨어 솔루션 업체 SAP에 매각했다. 이후 SAP에서 인메모리 빅데이터 플랫폼 SAP HANA를 연구개발해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차상균 교수는 “대학은 매년 새로운 학생들과 교수가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라는 점에서 희망이 있다고 본다”면서 “이전에는 연구를 하면서 논문을 쓰는 게 대학의 주요 목표였지만 최근에는 창업을 하겠다는 학생과 교수들도 많이 나오고 있는 만큼 가능성을 발현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고, 학생이나 교수들도 논문을 쓰면서 서비스적인 부분까지 갖춰서 최종적으로 시장에 나가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연구를 진행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또 열정적인 청년들이 리드를 하고 은퇴자들은 조력자로 힘을 보태주는 ‘하이브리드 창업’을 장려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사장 출신 70세 은퇴시니어가 30대 여자 CEO가 이끄는 스타트업의 인턴으로 취직해 다채로운 경험을 살려 회사가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내용을 담은 영화 ‘인턴’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삼성전자 전무 출신의 이경주 미래경영전략연구원장은 “일자리가 부족해지니 국가적으로 창업을 권장하고 있지만 사회적인 경험이 없고 자본력도 부족하고 인적 네트워크도 약한 청년들이 그냥 창업에 나서면 거의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정부가 한국의 자산인 경험 많은 은퇴자들과 청년들은 매칭시켜주는 하이브리드 형태의 창업을 제도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규제의 틀'도 중요
“대학원에 들어간 파리석사는 파리 전체를 연구하면 절대로 졸업할 수 없기 때문에 파리의 특정 부위, 예를 들면 ‘파리 뒷다리’를 전공해 2년 간 연구한 다음 석사학위를 받는다. 파리학과 박사과정생은 파리 뒷다리를 통째로 전공해서는 절대로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없는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파리 뒷다리 발톱’을 전공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파리 발톱을 전공한 박사전공자간에도 발톱 부위별 전공부위가 달라서 커뮤니케이션이 쉽게 일어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가 파리학과 출신들의 지식경영 추진 방법이라며 소개한 이야기다. 우스갯소리지만 학문을 지나치게 세분화 하다보니 파리 특정 부위가 파리 몸통 전체와 어떤 구조적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되는 우를 저지른다는 지적이 담겨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 혁신의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교육부터 달라져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디지털 혁신 시대에는 잘게 쪼개진 학과 중심의 교육으로는 혁신에 적합한 인재를 키우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인문, 사회, 자연과학, 공학, 의학을 아우르는 탈학제적 전문 교육 체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같은 맥락에서 4차산업혁명은 서로 다른 기술과 서비스의 융복합이 기본이기 때문에 네거티브 규제로 발상을 전환해야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영미법은 사례 기반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례가 만들어진 다음에야 가치 판단을 통해 합법화가 된다. 실사구시적 가치를 중시하는 중국도 알리페이와 같은 핀테크 서비스가 시장을 키울 때까지 정부는 간섭하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 의도적으로 애매한 자세로 기다리기도 한다.
반면 대륙법 체계의 우리나라는 디지털 혁신에 불리하다. 산업화 과정에서 특정 분야의 발전을 진흥하거나 독과점을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법이 새로운 디지털 혁신 기업의 출현을 막는 지뢰밭이 되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이미 제정된 법이라도 국가의 디지털 혁신 관점에서 검토해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인 분야가 자율주행차다. 캘리포니아주는 현재 20개 회사의 130대의 자율주행 시험 차량과 480명의 자율주행 시험운전면허가 등록돼있다.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들의 요구를 선제적으로 받아들여 기술 혁신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규제 개혁과 함께 정부와 국회가 기술변화의 흐름을 따라가며 적절한 규제의 틀을 마련하는 입법 활동의 역할도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IT자동차 업계에서는 지난해 5월 테슬라 차량의 자율주행 중 일어난 사고가 대표적으로 회자된다. 운전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부정적인 여론이 혁신 시도를 가로막지 않았다는데서 국내 업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놀라움을 표시한다. 덕분에 테슬라는 3억마일 이상의 자율주행 데이터를 보유할 수 있게 됐다.
한국전기차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는 "현재 많은 IT 기업들이 미래 먹거리로 집중하고 있는 미래 자동차 산업의 관건은 미래 자동차 시대를 주도하는가인데 넘버원이 되지 않고는 주도권을 쥐기 힘든 만큼 '패스트 팔로워'가 아닌 '퍼스트 무버'가 돼야한다"면서 "우리나라의 많은 스마트카 관련 인재들이 테슬라 같은 해외 기업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정부가 만들어줘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