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이신두 교수, “과학기술 과제, 5개로 줄여 하나씩 해결”(시사저널,2017.06.01)
“우리나라 인구 적다. 수출 시장밖에 답이 없다. 시장 잠재력, 성장 가능성 본다면 중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이 제일 좋은 시장이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을 공략해야 한다.”
이신두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앉자마자 베트남 이야기부터 먼저 꺼냈다. 이 교수는 나라를 위해서, 미래 세대를 위해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싶다고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장장 4시간동안 이어진 인터뷰는 간담회 혹은 강의에 가까웠다. 그만큼 이 교수의 시선을 깊게 엿볼 수 있었다. 디스플레이보다는 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나라 걱정이 더 앞선 이신두 교수를 지난달 31일 서울대학교에서 만났다.
왜 베트남인가?
너무 저개발 국가는 저가격 시장만 통한다. 우리나라는 고부가가치로 가야한다. 그러려면 중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이 제일 적합하다. 특히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정서도 비슷하고 바다자원이 풍부하다. 다양한 기후대가 분포하면서 식물과 식생분포도 다양하다. 인프라 구축은 잘 안 돼 있다. 이 영역에 우리가 진출할 수 있다. 서로 동반성장이 가능한 구조다. 또 베트남을 잡으면 캄보디아와 라오스도 같이 따라올 거다. 베트남은 아시아 맹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베트남 문화교류협회(KOVECA) 자문위원장이던데.
외교부보다 내가 주한베트남대사와 더 친하다. 이미 5년 전부터 네트워크를 구축해 놨다. 주한베트남대사와 과학기술에 대해 논의하다가 인연이 돼서 친하게 지냈다. 민간 외교처럼 많이 도와주고 있다. 실제로 베트남 고위급 인사가 직접 우리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외교부에서 깜짝 놀라서 나에게 전화를 왔더라. 어떻게 아느냐고. 베트남은 관계를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한번 맺은 관계가 돈독하게 유지되고 있다. 베트남 대학에서 객좌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정부부처에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지금의 경제외교로는 안 된다. 턱 없이 부족하다. 범부처를 담당할 국제협력 수석실(가칭)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각 부처마다 국제협력국이 다 있는데 단순히 대통령 해외 순방 수행이나 장관 의전수행, 의제 개발 정도의 역할만 해서는 안 된다. 대사관은 해외에 진출해 있는 교민들의 안전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애로사항을 챙겨야 한다. 그런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서 차기 대사관에서 물려줘야 한다.
활동 영역이 광범위하다. 맡고 있는 영역이 얼마나 되나.
미래창조과학부 자체평가위원회 위원장이다. 미래부 출범하면서부터 계속 일을 맡고 있다. 전문기관효율화 특별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연구비 관리 평가기관인데 예산분배에 관해서 분석하고 있다. 세계 3대 디스플레이 학회인 미국광학회(OSA)와 국제광전자공학회(SPIE),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 석학회원이다. 한국·베트남문화교류협회 자문위원장이기도 하고. 늘 잠이 모자라지만 읍소하면 도와줄 수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드디어 최근 이야기를 한다. 최근 열렸던 SID 어땠나.
전시회가 디스플레이 전성기 수준의 1/3 정도에 불과했다. 디스플레이 시장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같다. 과거처럼 쇼킹한 내용도 없었다. 디스플레이가 휴대전화 액정, 노트북 액정, TV, 가전으로 다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제 어떤 시장으로 가야할지 의문이다. 휘어지고 늘어지는 디스플레이가 나왔지만 어디에, 어떻게 상품화할 건지는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인 학회장에다가 석학회원도 5명 중 3명이 한국인이더라.
디스플레이는 한국이 잡고 있다. 특히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신기술이 엄청 앞서있다. 하지만 2~3년 이내에 중국인으로 다 바뀔 거다. 포상위원회도 그렇고 임원들 상당수가 중국 사람들이다. 나라가 크다보니 확실히 인재도 많고 정부가 산업 지원도 잘 해준다. 금방 따라올 거다.
어떤 기술이 가장 인기를 끌었나.
삼성전자의 스트레처블(stretchable) OLED가 가장 인기가 많았다. 늘어나는 OLED가 처음 등장했으니. 다른 곳은 옹기종기 모여서 관람하는 수준이었다면 스트레처블 부스는 줄을 길게 서서 기다려야 볼 수 있었다.
LCD의 대가신데 요즘 디스플레이 시장 어떻게 보고 있나.
(386노트북을 보여주며) 디스플레이 센세이션(sensation)은 LCD 노트북이었다. 내가 직접 연구했던 제품이라 못 버리고 있다. 1995년에 사용됐던 LCD가 현재도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LCD는 가격도 저렴하고 공정도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패널 공정이 표준화가 되어 누구라도 돈만 있으면 LCD를 찍어낼 수 있다. 최근 들어 OLED가 주목을 받고 있지만 기술적으로 어렵고 공정과정도 많다. 적어도 9개의 층이 필요하다. 그 얇은 층 안에서 표면처리 등 미묘한 것 때문에 불량이 나기도 쉽다. 수율도 낮다. 따라서 가격도 너무 높다.
최근 어떤 연구에 집중하고 있나.
OLED의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수직구조 유기발광트랜지스터(OLET)를 개발했다. 세계적으로 내가 처음 개발했다. 발광소재와 전극의 배열구조를 수직으로 바꿔 그물처럼 뚫린 곳에서 면발광이 가능하다. OLED보다 발광이 더 좋다. 디스플레이를 구동하는 트랜지스터가 발광소재를 직접 작동시키기 때문에 트랜지스터 수는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래서 가격도 LCD 수준으로 갈 수 있을 거다. 4월에 특허가 나왔고 미국 특허도 걸어놓은 상태다. 기업이 만드는 걸 한 번 보고 싶은데 아직 기업에서 OLED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 외에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 나노미터의 반도체 입자를 균일하게 분포해서 패턴 형성하는 기술도 연구하고 있다. 제약실험이나 질병실험을 할 수 있는 인공 세포막 기본 플랫폼과 생체모방 기술도 연구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과학기술 기초연구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원천연구가 중요하다. 기초연구에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십 년의 노력을 바탕으로 혁신이 일어난다. 이 혁신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 지속가능한 연구가 담보가 돼야 한다. 기초기술은 호흡이 길기 때문이다. 정부에 따라 정책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10년 이상 미래를 내다보고 과학기술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5G(5세대),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등 특정기술만 얘기하면 안 된다. 알맹이는 기반 산업에 있다. 기반 과학기술이 발전해야 정보통신기술(ICT)도 발전하고 서로 선순환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
매번 같은 주장을 하고 계신데.
맞다. 지금 주장하는 내용들 노무현 정부 때도 제안했던 내용들이다. 그대로다. 참 안 바뀐다. 대통령들 나오면 늘 100대 과제를 내놓는데 차라리 5대 과제 정해놓고 1년에 하나씩이라도 해결했으면 좋겠다. 만날 100개는 답이 없다. 미래부에 20조원에 달하는 돈이 들어갔는데 과학기술자들도 그에 걸맞은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
5가지 과제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앞선 정부 때부터 강조해오던 것이 5가지 있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가장 원하는 것은 편안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그러려면 경제성장이 돼야 한다. 과학기술 전체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혁신 동력이 돼야 한다. 우선 기초과학 연구와 잠재적 기술화를 해야 하고, 미래 파급효과 기반 원천기술‧산업기술 개발, 국민복지 공공기술 개발과 적용 확대, 고도성장 잠재력의 지식경제 산업 창출, 효율적 기술이전 및 행정 제도적 체계정비가 필요하다.
과학기술자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먼저 성장잠재력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한국의 큰 비전이 될 거다. 두 번째는 사회적인 문제 해결 기반도 과학기술자들이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게 책무다. 논문을 위한,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닌 직접 사회적인 문제에 맞서서 필요한 역할을 다 해야 한다. 지원받은 연구비 모두 국민의 세금 아닌가. 세금을 받았으면 연구를 취미 생활하듯 하지 말고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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