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권성훈 교수, 내성 가진 세균, 알고 싶다면?(사이언스타임즈,2017.10.19)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조기 진단 방식 개발
국내 보건산업 정책의 실무를 담당하는 기관인 보건산업진흥원은 수년 전부터 ‘다양한 항생제에 내성(耐性)을 가진 감염병 대응기술 개발 사업’을 주관해오고 있다.
이 사업의 목적은 내성을 가진 세균의 출현을 감시하고 신속하게 진단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내성을 가진 세균이 확산함으로써 발생되는 국가적 재난 상황을 미리 대비하여 국민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이 같은 사업은 비단 우리나라만 추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슈퍼박테리아의 감염으로 인하여 사망률이 높아지고 의료 비용이 상승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세계 각국은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형광 현상 이용해 세균 활동성으로 내성 파악
항생제는 병원성 세균이 일으키는 염증이 발생했을 때 사용하는 치료제다. 따라서 상비약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반드시 구비해둬야 하는 약품이지만, 오래 사용하거나 과다 복용을 하게 되면 내성이 생기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A항생제에만 내성이 있는 세균에게 B항생제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이 세균은 A항생제 외에도 B항생제에 대한 내성까지 얻을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병을 고치려다가 더 큰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세균이 특정 항생제에 대해 내성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를 조기에 알 수 있다면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물론 지금도 세균이 특정 항생제에 대해 내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검사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세균을 배양한 다음, 내성이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파악하는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보통 3~4일 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미 캘리포니아 공대(Caltech)의 연구진이 세균의 항생제 내성 여부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진단 키트를 개발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연구진은 사람들에게 자주 발생하는 염증인 ‘요로감염(urinary tract infections)’을 일으키는 세균을 가지고 내성 여부를 파악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요로감염에 걸린 54명으로부터 채취한 세균을 검체(檢體)로 사용했다.
연구진은 우선 여러 개의 작은 구멍이 형성되어 있는 진단 키트에 세균을 투입한 후에 이를 둘로 나눠서 한쪽에만 항생제를 15분간 투여했다. 그 후 박테리아의 활동성을 검사하기 위해 디램프(dLAMP)라는 이름의 형광램프를 비췄다.
캘리포니아 공대의 관계자는 “만약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세균이라면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은 쪽과 사용한 쪽 모두 비슷한 수준으로 활동하면서 선명한 형광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라고 설명하며 “그러나 내성이 없다면 항생제를 사용한 쪽은 형광반응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이 때 사용한 항생제는 세균을 죽이는 데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작에서부터 결과까지 약 30분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소개하며 “실험의 재현성을 위해 계속 테스트를 해야겠지만, 이 방법이 정확하다면 앞으로 불필요한 항생제 남용을 막는데 커다란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미세형상제작기술 이용해 세균의 내성 여부 조사
캘리포니아 공대 연구진이 개발한 방법보다 진단 속도는 조금 느리지만, 기존 방법보다는 훨씬 빠른 기술이 국내에서도 개발되어 의료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개발의 주역들은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의 권성훈 교수팀과 서울대 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소속의 연구진, 그리고 바이오벤처기업인 퀀타매트릭스의 연구원들로 이루어진 공동연구진이다.
이들은 미세형상제작기술을 이용한 바이오칩을 통해서 병원성 세균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갖고 있는지를 빠른 시간에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 진단기술의 경우는 세균을 오랜 시간 동안 배양한 뒤에 나타나는 변화를 측정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공동 연구진이 개발한 기술은 항생제에 대한 세균들의 반응을 현미경으로 자동 관찰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진단에 필요한 시간을 대폭 줄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기술개발 이후 연구진은 현장에서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하여 총 206명의 환자로부터 채취한 세균 검체를 가지고 항생제에 대한 내성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진단 속도가 빠르면서, 정확도까지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공동연구진의 한 관계자는 “진단에 필요한 시간을 대폭 줄였기 때문에 항생제를 처방하기 전에 내성 여부를 신속히 확인할 수 있다는 길이 열리게 됐다”라고 말하며, “내성 여부를 신속하게 파악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내성이 약한 세균에 감염된 환자에게 불필요하게 강력한 항생제를 쓰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세균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항생제의 오·남용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오·남용을 하다보면 항생제에 대한 돌연변이가 생기게 되고, 다시 내성을 가진 유전 정보를 후손에게 물려주면서 더 이상 해당 항생제는 효과가 없어지게 된다는 것.
공동연구진을 총괄하고 있는 권 교수도 “환자에 대한 항생제의 오·남용은 불과 며칠 만에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이 항생제에 강한 슈퍼박테리아를 탄생시킨 원인이 된 만큼, 이를 막기 위한 기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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