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이종호S 교수, “절정의 반도체, 위기의 경고등 켜졌다”(뉴시스,2018.07.09)
-반도체가 수출과 경제를 이끌고 있지만 중국 도전 심각
-새로운 파생기술 개발 선도하며 쉼 없이 달려야 현상 유지
-정부·기업·대학 유기적 협력체제로 1당100 인재 키워야
세계적 반도체 권위자 이종호 서울대교수
<김현호의 넛지인터뷰>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이종호 교수(전기·정보공학부)는 경남 합천읍에서 30리 정도 떨어진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출신인 그는 경북대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마친 뒤 원광대와 경북대를 거쳐 서울대에 재직 중이다. 그가 국제 반도체 학계에 명성을 떨친 것은 2001년 세계 최초로 3차원 반도체 소자인 ‘벌크 핀펫(FinFET)’ 기술을 개발하면서였다. 평면에서 만들어진 2차원 반도체 트랜지스터를 3차원으로 설계함으로써 트랜지스터의 크기와 에너지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인 이 기술은 현재 세계 주요 반도체 회사의 핵심 표준 기술로 채택되고 있다. 그는 국제전기전자공학회 회원의 0.1% 이하만 선정되는 석학 회원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막 출발할 무렵 산골 오지에서 나와 반도체 공부를 시작해 이제 세계 톱 클라스 학자로 우뚝 선 이 교수의 개인사(史)는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발전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국제 무대에 진출할 때 상황은 산골오지 소년이 대도시로 나갔을 때의 처지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자본도 기술도 없이 오직 “실패하면 죽는다”는 각오 하나로 미국과 일본을 따라잡기 시작해 이제는 그들을 제치고 선두에 선 한국 반도체가 아닌가.
우리 반도체는 지금 유례없는 절정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디램 메모리 분야에서 국제시장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1위, SK하이닉스가 2위고 그 뒤를 미국의 마이크론이 잇고 있다. 현재의 한국 경제는 수출이 지탱하고 있고, 수출은 반도체가 끌고 가는 형국이다. 작년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한 비중은 17%였고, 올해는 단일 품목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수출액 1천억 달러를 넘어 2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할 전망이다. 그러나 한편에선 반도체의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들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고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추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마저 무너진다면? 그건 곧 한국 경제의 재앙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반도체의 현재와 미래, 중국의 위협 정도 등에 대해 이 교수의 진단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우리나라 반도체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국제 반도체학회 등에 나가면 한국의 위상을 실감한다. 미국 일본 유럽 등지의 학자들이 우리를 보는 시선이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한국이 반도체에 뛰어들었던 초창기에 우리가 이 정도 성공하리라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디램은 세계 시장의 70%를, 그리고 낸드 플래시 메모리 분야는 약 50%를 점유하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 자율주행자동차, IoT(사물인터넷) 기술 등의 약진에 힘입어 메모리 시장이 좋아졌다. 하지만 언제든지 시장은 공급과잉이나 경쟁,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바뀔 것이므로 안심할 수 없다. 비메모리 분야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비메모리 분야는 응용이 다양하여 모든 분야에서 잘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 인공지능 반도체는 메모리 기술의 의존도가 크지만 응용은 일종의 프로세서에 해당하므로 비메모리로 볼 수 있다. 이는 소위 신경모방 기술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비메모리 형태인 뉴로모픽 컴퓨팅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분야에서 우리가 앞서 간다면 향후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우리나라의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비메모리든 메모리든 세계 최고 기술을 가지고 시장을 선도하면 된다고 본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우리나라의 연구 수준이 주변 강대국에 비해 앞선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메모리 양산기술이 앞서 있기 때문에 연구수준도 앞서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즉, 미래 기술에 대해 우리가 매우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전망이 어두울 것이다. 이제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 그리고 대학·연구소와 정부가 기존의 사고에서 벗어나 정말 협업을 통해 효율을 만들어 가야한다. 우리의 선택지는 과거에 비해 더 적어졌다.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의 실력은 양산기술이다. 이것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른다. 이러한 사실을 정말 신중하게 받아들이고 협력하여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것이 진정 우리의 반도체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근본적으로는 우리 국민의 기질이랄까, 문화적 배경 등이 반도체 분야와 잘 맞는 것 같다. 어떤 목표를 세우고 일사분란하게 속도감 있게 달려가는 데는 우리만한 국민이 또 있겠나. 한국인의 탁월한 손재주 등도 반도체와 잘 맞는 것 같다.
이런 국민적 자질을 토대로 일찌감치 반도체를 미래의 먹거리 산업으로 내다보고 수많은 위험과 모험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전력투구한 선구적 기업인들과 이를 정책적으로 잘 뒷받침해 준 정부, 그리고 불철주야 기술개발에 진력한 연구진과 산업일꾼들의 노력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오늘의 한국 반도체 산업을 일구어냈다고 본다. 이는 반도체만이 아니라 어느 산업분야든 마찬가지일 것이고, 어느 한 분야가 발전하려면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이다.”
-한편에선 한국 반도체 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동의하나.
“위기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현재에 안주한다면 금방 위기가 닥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누구를 따라할 대상이 없어졌다. 우리 스스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두 발 자전거와 같다. 멈추는 순간 쓰러진다. 무엇보다 중국의 추격은 정말 위협적이다.”
-중국의 위협을 실감하고 있나.
“중국에서 진행되는 반도체 관련 국제학회의 활동이 한국보다 훨씬 많다. 국제적인 저명 학자들을 초청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다. 저도 중국 쪽 초청을 다 소화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들이 한국에서는 왜 반도체 기술관련 국제 학회 활동이 별로 없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최고 국제 학회에서 발표되는 중국의 논문은 없거나 고작 한 편 정도였다. 우리는 10여 편에 달했다. 지금은 중국이 우리의 두 배다. 중국의 발전 속도는 퀀텀 점프(폭발적 대약진)다.
2005년인가, 내가 경북대 교수로 있을 때 중국 베이징대학과 대학 간 교류를 위해 방문한 적이 있다. 반도체 실험을 위한 청정실 바닥이 콘크리트였던 것으로 기억되고 일회용 장갑이나 마스크도 많이 부족한 상태로 보였다. 도저히 반도체관련 시설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돌아와 경북대를 방문한 중국 교수 편에 한국산 장갑과 마스크 등을 지원한 적이 있다. 무척 고마워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시설이 우리보다 더 좋다. 연구를 하는 데 필요한 장비도 모두 갖추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연구소를 중국내 각 성(省)에서 성적 1~2등 하는 우수 인재들이 꽉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 칭화대의 학내 도로가 매우 넓다. 수업이 끝나고 그 넓은 도로를 학생들이 꽉 채우고 내려오는 걸 보면 무서울 지경이다. 그 학생들 한명 한명이 중국 대륙 곳곳에서 몰려온 최우수 인재들이다. 한국이 여기에 맞서려면 1당 10, 1당 100의 인재들을 키워내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선언했다. 한국이 직격탄을 맞게 되나.
“현재 양산 기술에서 한국은 중국과 상당한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디램과 낸드는 한국이 잘하고 있다. 디램은 기술적으로 아주 복잡하다. 개인적으로 디램은 아트(예술)라고 부르고 싶다. 수십 년을 들여다 보면서 연구하고 있지만 들여다볼수록 신기하다. 가치 자체만으로 볼 때는 디램은 개당 천만 원이나 1억 원을 줘도 아깝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품귀현상이 나면 그렇게 주고라도 사야하는 것이 디램이다. 그러나 지금 시장 가격은 3~4달러에 지나지 않고 한때는 약 1달러까지 떨어졌다.
무슨 말이냐 하면, 디램의 기술은 그렇게 단기간에 축적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이 걸린다. 중국이 우리 수준에 도달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만 우리는 기술 성장 곡선에서 정점의 정체기인 반면, 중국은 빠르게 따라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線)을 따라 발전한다면 중국은 시행착오를 해도 병렬적으로, 입체적으로 축적해 가는 양상이다. 때문에 얼마의 시간차가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아마도 중저 수준의 반도체 메모리는 조만간 중국이 차지할 것이다. 가령 휴대폰 중에서도 성능이 비교적 단순한 제품은 첨단 반도체를 내장할 필요가 없다. 중국 시장에 팔리는 이런 제품에는 중국 반도체가 들어갈 것이다. 중국은 자체 시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절대 강점이다. 중국이 두 자리 수의 시장 점유율을 갖게 되면 자생력을 갖추게 될 것이고 우리의 입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중국은 2025년까지 1조 위안(176조 원)을 투입해 반도체 자급률을 현재의 10% 남짓에서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한국의 작년 반도체 수출액(997억 달러) 중 40%가 중국에 내다 판 것이다. 기술 격차는 다소 여유가 있을지라도 시장 상황은 다급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위협에 맞서 한국 반도체가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이제 우리 앞에는 모델로 삼을 아무 것도 없다. 우리 스스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반도체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의 파생 기술은 무한하다고 할 수 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소프트웨어인 딥러닝 분야는 미국과 중국이 양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고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하드웨어 분야는 반도체의 새로운 영역이고 우리가 해볼 만하다. 반도체의 활용 영역은 앞으로도 계속 새롭게 창출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계속 앞서가야 한다. 뒤처지게 되는 순간 우리에게 주어질 자리는 아예 사라지게 된다.”
-계속 앞서 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창의적 인재들을 키워야 한다. 이론에 밝고 실제 공정 경험을 충분히 쌓고 창의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이런 인재들이 그냥 생겨나지는 않는다. 특히 실험과 공정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 봐야 한다. 실제 해보지 않고 이론만 공부해서는 새로운 기술이나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또한 여러 분야, 가령 트랜지스터와 회로 등 각각의 분야를 직접 경험해 봐야 융합적 사고가 가능하다. 한 분야를 아주 잘하는 사람에게 관련이 있는 다른 분야를 조금만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교육하면 탁월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기업에서는 신입사원을 뽑아보면 대학에서 반도체 공정을 해 본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소연한다. 기업에서 재교육을 해야 하는데 교육용 라인 하나 설치하고 운영하는 데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대학에는 공정교육을 포함한 교육을 할 수 있는 팹(실험실)이 있지만 시설과 장비가 낙후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최저의 예산으로 인력양성과 연구에 집중하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 연구소에서 지난 겨울방학 동안 반도체 관련 대학생과 대학원생, 기업체 직원을 대상으로 145명을 정원으로 2주간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터넷으로 접수를 받았는데 한순간에 950명 이상이 몰려 시스템이 다운됐다. 이번 여름 교육과정에도 120명 정원에 800명 이상이 몰려 고민이 크다. 미래의 기술개발을 꿈꾸는 분들,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 그리고 기업체 직원들이 마음 놓고 실험하고 배울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들 가운데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들이 나오고, 그들이 한국 반도체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면서 이끌고 가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스티브 잡스가 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정부의 역할과 지원은 어떤가.
“우리 반도체는 잘 되고 있고, 특히 대기업 중심의 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해 정부 지원이 인색한 게 사실이다. 이해되는 측면이 없지 않으나, 우리의 산업구조를 보고 정책을 펼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이 천문학적 자본을 투자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정부와 기업, 대학과 연구소가 이해관계를 떠나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을 이어갈 인재양성, 그리고 앞선 반도체 기술을 활용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술을 개발하여 끊임없이 앞서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무래도 미래 기술에 대비한 인력양성은 대학에서 효율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 팹 시설을 가진 대학을 지원하여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인재양성과 재교육을 할 수 있도록 인프라 지원을 해야 한다. 미래 기술은 인재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 부분은 가장 중요하게 추진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개발된 기술이 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효과적인 벤처기업 육성책을 만들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가령, 대학 연구실에서 오랜 동안 연구해서 기술적 축적이 된 기술에 대해 벤처창업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원생 제도 및 창업지원을 위한 과제를 만드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 그리고 대학·연구소가 어떻게 미래 기술에서 시너지를 만들어 앞서 나갈 수 있을지를 조속히 검토해서 발전할 수 있도록 안을 만들고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대기업은 반도체 관련 하드웨어 제작에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고, 중소/벤처기업과 대학/연구소는 다양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지고 있다. 정부는 이들이 협업하여 시너지를 만들게 하고 또 각 기관에 이익이 되도록 정책을 만들고 조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반도체를 기반으로 다양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도록 정부가 나서서 정책을 만들고,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별로 없다. 이 시기를 놓치면 은퇴한 분들이 연금을 계획대로 받기도 어려울지 모른다. 훌륭한 인재양성과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첨단의 파생기술을 끊임없이 만들어 가는 모델을 시대의 상황에 맞게 만들어 내야 한다. 우리는 그런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잠시라도 방심하고 안주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비상한 각오와 위기의식으로 임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하에 국가적 정책을 짜고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주도적 역할을 정부가 해주어야 한다.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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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파생기술 개발 선도하며 쉼 없이 달려야 현상 유지
-정부·기업·대학 유기적 협력체제로 1당100 인재 키워야
이종호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이 5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장실에서 한국의 반도체산업에대해 김현호 뉴시스 상임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
세계적 반도체 권위자 이종호 서울대교수
<김현호의 넛지인터뷰>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이종호 교수(전기·정보공학부)는 경남 합천읍에서 30리 정도 떨어진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출신인 그는 경북대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마친 뒤 원광대와 경북대를 거쳐 서울대에 재직 중이다. 그가 국제 반도체 학계에 명성을 떨친 것은 2001년 세계 최초로 3차원 반도체 소자인 ‘벌크 핀펫(FinFET)’ 기술을 개발하면서였다. 평면에서 만들어진 2차원 반도체 트랜지스터를 3차원으로 설계함으로써 트랜지스터의 크기와 에너지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인 이 기술은 현재 세계 주요 반도체 회사의 핵심 표준 기술로 채택되고 있다. 그는 국제전기전자공학회 회원의 0.1% 이하만 선정되는 석학 회원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막 출발할 무렵 산골 오지에서 나와 반도체 공부를 시작해 이제 세계 톱 클라스 학자로 우뚝 선 이 교수의 개인사(史)는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발전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국제 무대에 진출할 때 상황은 산골오지 소년이 대도시로 나갔을 때의 처지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자본도 기술도 없이 오직 “실패하면 죽는다”는 각오 하나로 미국과 일본을 따라잡기 시작해 이제는 그들을 제치고 선두에 선 한국 반도체가 아닌가.
우리 반도체는 지금 유례없는 절정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디램 메모리 분야에서 국제시장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1위, SK하이닉스가 2위고 그 뒤를 미국의 마이크론이 잇고 있다. 현재의 한국 경제는 수출이 지탱하고 있고, 수출은 반도체가 끌고 가는 형국이다. 작년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한 비중은 17%였고, 올해는 단일 품목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수출액 1천억 달러를 넘어 2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할 전망이다. 그러나 한편에선 반도체의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들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고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추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마저 무너진다면? 그건 곧 한국 경제의 재앙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반도체의 현재와 미래, 중국의 위협 정도 등에 대해 이 교수의 진단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우리나라 반도체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국제 반도체학회 등에 나가면 한국의 위상을 실감한다. 미국 일본 유럽 등지의 학자들이 우리를 보는 시선이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한국이 반도체에 뛰어들었던 초창기에 우리가 이 정도 성공하리라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디램은 세계 시장의 70%를, 그리고 낸드 플래시 메모리 분야는 약 50%를 점유하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 자율주행자동차, IoT(사물인터넷) 기술 등의 약진에 힘입어 메모리 시장이 좋아졌다. 하지만 언제든지 시장은 공급과잉이나 경쟁,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바뀔 것이므로 안심할 수 없다. 비메모리 분야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비메모리 분야는 응용이 다양하여 모든 분야에서 잘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 인공지능 반도체는 메모리 기술의 의존도가 크지만 응용은 일종의 프로세서에 해당하므로 비메모리로 볼 수 있다. 이는 소위 신경모방 기술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비메모리 형태인 뉴로모픽 컴퓨팅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분야에서 우리가 앞서 간다면 향후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우리나라의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비메모리든 메모리든 세계 최고 기술을 가지고 시장을 선도하면 된다고 본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우리나라의 연구 수준이 주변 강대국에 비해 앞선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메모리 양산기술이 앞서 있기 때문에 연구수준도 앞서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즉, 미래 기술에 대해 우리가 매우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전망이 어두울 것이다. 이제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 그리고 대학·연구소와 정부가 기존의 사고에서 벗어나 정말 협업을 통해 효율을 만들어 가야한다. 우리의 선택지는 과거에 비해 더 적어졌다.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의 실력은 양산기술이다. 이것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른다. 이러한 사실을 정말 신중하게 받아들이고 협력하여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것이 진정 우리의 반도체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종호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이 5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장실에서 김현호 뉴시스 상임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
-한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근본적으로는 우리 국민의 기질이랄까, 문화적 배경 등이 반도체 분야와 잘 맞는 것 같다. 어떤 목표를 세우고 일사분란하게 속도감 있게 달려가는 데는 우리만한 국민이 또 있겠나. 한국인의 탁월한 손재주 등도 반도체와 잘 맞는 것 같다.
이런 국민적 자질을 토대로 일찌감치 반도체를 미래의 먹거리 산업으로 내다보고 수많은 위험과 모험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전력투구한 선구적 기업인들과 이를 정책적으로 잘 뒷받침해 준 정부, 그리고 불철주야 기술개발에 진력한 연구진과 산업일꾼들의 노력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오늘의 한국 반도체 산업을 일구어냈다고 본다. 이는 반도체만이 아니라 어느 산업분야든 마찬가지일 것이고, 어느 한 분야가 발전하려면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이다.”
-한편에선 한국 반도체 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동의하나.
“위기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현재에 안주한다면 금방 위기가 닥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누구를 따라할 대상이 없어졌다. 우리 스스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두 발 자전거와 같다. 멈추는 순간 쓰러진다. 무엇보다 중국의 추격은 정말 위협적이다.”
-중국의 위협을 실감하고 있나.
“중국에서 진행되는 반도체 관련 국제학회의 활동이 한국보다 훨씬 많다. 국제적인 저명 학자들을 초청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다. 저도 중국 쪽 초청을 다 소화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들이 한국에서는 왜 반도체 기술관련 국제 학회 활동이 별로 없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최고 국제 학회에서 발표되는 중국의 논문은 없거나 고작 한 편 정도였다. 우리는 10여 편에 달했다. 지금은 중국이 우리의 두 배다. 중국의 발전 속도는 퀀텀 점프(폭발적 대약진)다.
2005년인가, 내가 경북대 교수로 있을 때 중국 베이징대학과 대학 간 교류를 위해 방문한 적이 있다. 반도체 실험을 위한 청정실 바닥이 콘크리트였던 것으로 기억되고 일회용 장갑이나 마스크도 많이 부족한 상태로 보였다. 도저히 반도체관련 시설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돌아와 경북대를 방문한 중국 교수 편에 한국산 장갑과 마스크 등을 지원한 적이 있다. 무척 고마워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시설이 우리보다 더 좋다. 연구를 하는 데 필요한 장비도 모두 갖추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연구소를 중국내 각 성(省)에서 성적 1~2등 하는 우수 인재들이 꽉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 칭화대의 학내 도로가 매우 넓다. 수업이 끝나고 그 넓은 도로를 학생들이 꽉 채우고 내려오는 걸 보면 무서울 지경이다. 그 학생들 한명 한명이 중국 대륙 곳곳에서 몰려온 최우수 인재들이다. 한국이 여기에 맞서려면 1당 10, 1당 100의 인재들을 키워내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선언했다. 한국이 직격탄을 맞게 되나.
“현재 양산 기술에서 한국은 중국과 상당한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디램과 낸드는 한국이 잘하고 있다. 디램은 기술적으로 아주 복잡하다. 개인적으로 디램은 아트(예술)라고 부르고 싶다. 수십 년을 들여다 보면서 연구하고 있지만 들여다볼수록 신기하다. 가치 자체만으로 볼 때는 디램은 개당 천만 원이나 1억 원을 줘도 아깝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품귀현상이 나면 그렇게 주고라도 사야하는 것이 디램이다. 그러나 지금 시장 가격은 3~4달러에 지나지 않고 한때는 약 1달러까지 떨어졌다.
무슨 말이냐 하면, 디램의 기술은 그렇게 단기간에 축적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이 걸린다. 중국이 우리 수준에 도달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만 우리는 기술 성장 곡선에서 정점의 정체기인 반면, 중국은 빠르게 따라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線)을 따라 발전한다면 중국은 시행착오를 해도 병렬적으로, 입체적으로 축적해 가는 양상이다. 때문에 얼마의 시간차가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아마도 중저 수준의 반도체 메모리는 조만간 중국이 차지할 것이다. 가령 휴대폰 중에서도 성능이 비교적 단순한 제품은 첨단 반도체를 내장할 필요가 없다. 중국 시장에 팔리는 이런 제품에는 중국 반도체가 들어갈 것이다. 중국은 자체 시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절대 강점이다. 중국이 두 자리 수의 시장 점유율을 갖게 되면 자생력을 갖추게 될 것이고 우리의 입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중국은 2025년까지 1조 위안(176조 원)을 투입해 반도체 자급률을 현재의 10% 남짓에서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한국의 작년 반도체 수출액(997억 달러) 중 40%가 중국에 내다 판 것이다. 기술 격차는 다소 여유가 있을지라도 시장 상황은 다급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위협에 맞서 한국 반도체가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이제 우리 앞에는 모델로 삼을 아무 것도 없다. 우리 스스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반도체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의 파생 기술은 무한하다고 할 수 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소프트웨어인 딥러닝 분야는 미국과 중국이 양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고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하드웨어 분야는 반도체의 새로운 영역이고 우리가 해볼 만하다. 반도체의 활용 영역은 앞으로도 계속 새롭게 창출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계속 앞서가야 한다. 뒤처지게 되는 순간 우리에게 주어질 자리는 아예 사라지게 된다.”
-계속 앞서 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창의적 인재들을 키워야 한다. 이론에 밝고 실제 공정 경험을 충분히 쌓고 창의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이런 인재들이 그냥 생겨나지는 않는다. 특히 실험과 공정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 봐야 한다. 실제 해보지 않고 이론만 공부해서는 새로운 기술이나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또한 여러 분야, 가령 트랜지스터와 회로 등 각각의 분야를 직접 경험해 봐야 융합적 사고가 가능하다. 한 분야를 아주 잘하는 사람에게 관련이 있는 다른 분야를 조금만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교육하면 탁월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기업에서는 신입사원을 뽑아보면 대학에서 반도체 공정을 해 본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소연한다. 기업에서 재교육을 해야 하는데 교육용 라인 하나 설치하고 운영하는 데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대학에는 공정교육을 포함한 교육을 할 수 있는 팹(실험실)이 있지만 시설과 장비가 낙후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최저의 예산으로 인력양성과 연구에 집중하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 연구소에서 지난 겨울방학 동안 반도체 관련 대학생과 대학원생, 기업체 직원을 대상으로 145명을 정원으로 2주간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터넷으로 접수를 받았는데 한순간에 950명 이상이 몰려 시스템이 다운됐다. 이번 여름 교육과정에도 120명 정원에 800명 이상이 몰려 고민이 크다. 미래의 기술개발을 꿈꾸는 분들,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 그리고 기업체 직원들이 마음 놓고 실험하고 배울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들 가운데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들이 나오고, 그들이 한국 반도체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면서 이끌고 가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스티브 잡스가 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정부의 역할과 지원은 어떤가.
“우리 반도체는 잘 되고 있고, 특히 대기업 중심의 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해 정부 지원이 인색한 게 사실이다. 이해되는 측면이 없지 않으나, 우리의 산업구조를 보고 정책을 펼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이 천문학적 자본을 투자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정부와 기업, 대학과 연구소가 이해관계를 떠나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을 이어갈 인재양성, 그리고 앞선 반도체 기술을 활용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술을 개발하여 끊임없이 앞서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무래도 미래 기술에 대비한 인력양성은 대학에서 효율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 팹 시설을 가진 대학을 지원하여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인재양성과 재교육을 할 수 있도록 인프라 지원을 해야 한다. 미래 기술은 인재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 부분은 가장 중요하게 추진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개발된 기술이 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효과적인 벤처기업 육성책을 만들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가령, 대학 연구실에서 오랜 동안 연구해서 기술적 축적이 된 기술에 대해 벤처창업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원생 제도 및 창업지원을 위한 과제를 만드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 그리고 대학·연구소가 어떻게 미래 기술에서 시너지를 만들어 앞서 나갈 수 있을지를 조속히 검토해서 발전할 수 있도록 안을 만들고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대기업은 반도체 관련 하드웨어 제작에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고, 중소/벤처기업과 대학/연구소는 다양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지고 있다. 정부는 이들이 협업하여 시너지를 만들게 하고 또 각 기관에 이익이 되도록 정책을 만들고 조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반도체를 기반으로 다양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도록 정부가 나서서 정책을 만들고,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별로 없다. 이 시기를 놓치면 은퇴한 분들이 연금을 계획대로 받기도 어려울지 모른다. 훌륭한 인재양성과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첨단의 파생기술을 끊임없이 만들어 가는 모델을 시대의 상황에 맞게 만들어 내야 한다. 우리는 그런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잠시라도 방심하고 안주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비상한 각오와 위기의식으로 임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하에 국가적 정책을 짜고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주도적 역할을 정부가 해주어야 한다.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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