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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문승일 교수, “한전 활용 못하면 ‘황금알 거위' 관상용으로 두는 꼴"(조선비즈,2019.04.20)

2019.04.20.l 조회수 9513
유연성 키울 법 정비 절실
타 분야와 교류해 시장 키워야

산업용 전기요금 소폭 인상해야

문승일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대학원 전기공학 박사,
서울대 공과대학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녹색성장위원회 위원, 공학한림원 정회원

"한국전력공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입니다. 그러나 법적 보완이 없으면 관상용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문승일(58) 전 한국전력공사 기초전력연구원장(서울대 공과대학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서울대 기초전력연구소장)은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3월 11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 있는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매우 분주했다. 한 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중 5분에 한 번꼴로 전화가 울렸다.

문 전 원장은 기존 전력망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스마트그리드 분야의 전문가다. 올해 공학한림원 정회원으로 임명됐다. 공학계의 ‘명예의 전당’으로 불리는 공학한림원 정회원은 한국뿐 아니라 공학한림원이 있는 27개국에서 권위자 대접을 받는다.

그는 "한전이 진화하는 전력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국내법적인 보완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현행 전기사업법은 신재생에너지 수용이 아니라 화력·원자력발전소와 같은 대규모 전력망을 잘 운영하는 데 적합하게 만들어져 있어 한전이 신재생에너지를 대규모로 보급하는 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또 "앞으로의 전력 산업은 기존과는 다르게 흘러갈 것이 분명하다"면서 "한전이 정보통신 등 다른 분야와 교류를 강화해 새로운 시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신시장 전망은.

"100년 동안 기다렸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 에너지저장장치(ESS)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의 급속한 기술 혁신에 따라 2030년에는 에너지 신시장 규모가 12조달러(약 1경5000조원)에 달할 것이다. 한전은 발전·송전·변전·배전에서 판매까지 전통적인 전력 인프라는 이미 완벽하게 구축했다. 한전이 가진 전문성과 노하우를 살리면 성공 가능성이 충분하다."

해외에서 한전이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나.

"해외 전력 시장에서 한전의 브랜드파워는 전자분야에서 삼성이 가진 그것보다도 오히려 크다. 한전은 소비자와 거래(B2C) 기업이 아니라 기업과 거래(B2B) 또는 정부와 거래(B2G)를 수행하기 때문에 덜 알려졌지만, 내실이 매우 탄탄하다. 한국의 전기 품질은 이미 연간 정전 시간, 주파수 유지율, 전압 유지율 등의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발전 분야 기술도 상당 부분 자립화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는 2016년 전력 유틸리티 부문 세계 1위 기업으로 한전을 꼽기도 했다."

어떻게 해외에 진출해야 하나.

"각국 정부를 상대해야 하는 전력 사업의 특성상 한전 같은 곳이 없으면 단독 진출은 어렵다. 한전의 브랜드파워를 활용해서 관련 기업들과 동반 진출해야 한다. 현지 정부로서는 국가 인프라의 일부를 구매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거래 상대방의 신뢰도를 매우 중시한다. 한전을 활용하지 못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관상용으로 놔두는 셈이 될 것이다. 한국이 이미 구축해둔 인프라가 개발도상국의 경우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한전이 현지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한전의 신사업 진출을 가로막는 건 없나.

"전기사업법을 고쳐야 한다. 이 법은 태양광·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 수용이 아니라 화력·원자력발전소 등 대규모 전력망을 운영하는 데 맞도록 만들어졌다. 이러한 법체계에서 신재생에너지를 대규모로 보급하는 건 어렵다. 신재생에너지를 키우려면 ESS 또한 국가적인 규모로 확 키워야 한다. 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타업권과 교류를 강화해 정보통신네트워크·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인공지능(AI) 같은 기술이 융·복합돼야 한다. 이를 위한 법적 인프라를 새롭게 만드는 것은 민간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가 나서서 필요한 제도를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해외 전력 기업들은 어떤가.

"해외 전력 기업들은 인수·합병(M&A)이나 자회사 설립 등이 비교적 자유로워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 그러나 한전은 전기사업법에서 송배전 사업과 전기 판매 사업 등으로 업무 범위가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 자회사를 하나 설립하는 것도 어려운 등, 운신의 폭이 좁다. 글로벌 기업들은 활발히 변신하며 먹을거리를 찾아 경쟁하고 있다. 한전이 공기업이라는 한계와 법과 규제의 틀에 매여 있어 이런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정부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나.

"법을 고치거나 새로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에너지 공기업에 대한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 항목을 손보는 방법이 있다. 신사업에 대한 투자 규모를 경영평가 항목에 추가해 투자를 많이 하면 높은 점수를 주는 방식이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는 각 항목의 점수를 합산해 S~D등급으로 정해지는데 이에 따라 매년 성과급이 달라지는 등, 공기업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경영평가 항목 조정은 국회의 동의가 필요없는 기획재정부의 권한이다."

한전은 신사업 의지가 있나.

"한전은 AI와 빅데이터를 전력과 결합한 사업을 수행하고 싶어 한다. 다른 전력 공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은 법제도상 운신의 폭이 좁다 보니 정부가 전기차를 얘기하면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식으로 수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수퍼그리드에 대한 전망은.

"한국은 지리적으로 전력망이 완전히 고립됐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국가 간 전력 거래가 가능해지는(수퍼그리드)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역시 한전이 기술적으로 전력망 연결에 성공한다고 해도 근거법이 없는 상황이다. 법을 미리 정비해야 한다."

한전은 현행 전기요금이 너무 싸다고 한다.

"한국은 경제 성장 과정에서 기업들이 싼 가격에 에너지를 마음껏 쓰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원가 이하로 전기요금이 책정돼 왔고 현재도 그렇다. 이는 정부의 재생에너지 도입 강화 방침에 따라 한전의 적자를 키우고 있다. 이는 지속 가능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산업용 전기요금을 소폭 인상해야 한다. 물론 피해 보는 기업이 생기겠지만, 정부가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전기요금 조정은 지금처럼 쉬쉬하기만 해서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또 전력 사용을 효과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전력 사용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알려주어야만 한다. 전력 사용량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만 해도 상당한 양의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고 특히 피크시간대에는 수백만 킬로와트의 전력 소비를 일시적으로 줄일 수도 있다. 전력 사용에 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스마트미터’의 보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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