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서승우 교수, 세계는 목숨 건 미래 전쟁 중인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동아닷컴,2019.10.05)
자율주행차 전문가 서승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의 “지금 실리콘밸리에서는”
9월 23일 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이 2조4000억 원을 투자해 미국 앱티브와 손잡고 자율주행 합작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현대차는 2030년 완전 자율주행차(무인차) 개발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서승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자율주행차를 가장 오래 연구해온 공학자로 통한다. 2015년 제자들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토르드라이브(ThorDrive)’를 창업해 기술자문을 해주고 있다. 그를 이달 초 서울대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동안 현대차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이번 승부수가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앱티브는 세계 최대 자동차부품 기업 미국 델파이가 기존 자율주행 관련 기업들을 인수합병해 세운 자율주행 전문 기업이다. 50 대 50 합작법인을 세운 것이니 기술 공유와 협력 사업이 동등하게 이뤄져 그동안 현대차에 부족했던 소프트웨어 역량이 강화되리라 믿는다. 충분히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현대차는 그동안 수소차 개발에 주력해왔다.
“수소냐 전기냐 하는 것은 동력에 관한 문제라 자율주행 기술과는 다르다. 하지만 기존 전기차 모델로는 장거리 주행이 어렵고 자율주행 레벨이 올라갈수록 전력 소모도 많기 때문에 수소 기술과 결합하면 당연히 시너지 효과가 있을 거라고 본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자율주행 분야에서 구글, GM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으로 도약할 거라는 전망도 하던데.
“워낙에 기존 강자가 많고 탄탄해 3위권은 큰 희망이고, 5~10위권에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실리콘밸리 최대 화두는 바이오
매년 방학마다 실리콘밸리를 다녀오는 그인지라 실리콘밸리의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알 것 같아 지금 그곳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요즘 실리콘밸리의 화두는 뭔가.
“여전히 자율주행차를 중심으로 한 AI(인공지능) 빅데이터가 거센 흐름이고, 바이오 분야도 매우 활발하다.”
바이오? 우리는 죽을 쑤고 있는데.
“우리는 주로 신약 개발 쪽에 집중하지만, 바이오란 게 신약 말고도 질병 진단과 유전자 가위 등등 기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요즘엔 반려동물 쪽으로도 확대돼 질병 진단부터 항암제 연구까지 다양한 기술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그는 지난 여름방학에도 서울대 학생들과 함께 2주간 UC버클리 일대를 돌면서 이런 흐름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인 졸업생들이 만든 회사 두 곳을 소개하고 싶다. 하나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가진 벤처인데, 손상된 유전자 부위에 물질을 투입해 없애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질병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를 미리 제거하는 기술이다. 막 버클리대 박사학위를 받은 30대 후반의 한국인 청년들이 창업한 회사로, 실리콘밸리의 톱 브랜드 벤처캐피털로부터 거액을 투자받아 분위기가 매우 고무돼 있었다. 반려동물 항암치료 연구를 하는 한 벤처는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한국인 청년 두 명이 공동창업자였다. 직원이 10명인데 창업 1년 만에 실리콘밸리 내 동물병원 70여 곳과 계약을 맺어 암에 걸린 반려동물 치료는 물론, 항암제 연구도 하고 있었다. 라식수술에도 유전자가 활용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의사가 각막 두께만 보는 기계적인 판단만으로 무조건 수술을 했는데, 사실 라식수술 자체가 안 되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라식수술 적합 여부를 보는 유전자 진단 바이오 회사도 있었다.”
자율주행차 연구는 어떤가.
“미국 시가총액 상위 그룹들이 다 뛰고 있다고 보면 된다. 1등은 구글 웨이모로, 누적 마일 수가 가장 많다. 웨이모의 목표는 장기적으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술을 파는 것이다. 차량공유업체 우버와 리프트는 물론, 세계적인 물류업체 페덱스와 유피에스도 열심인데, 그들에게는 자율주행 기술을 이용해 인건비와 운전자의 피로도를 줄이겠다는 현실적인 목표가 있다. 이에 비해 애플, 인텔, 퀄컴 같은 반도체 기업들은 장래 펼쳐질 센서시장을 선점하고자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센서시장이라고 하면?
“자율주행에 들어가는 기본 기술이 센서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다 포함해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레이더나 카메라뿐 아니라, 하드웨어로부터 들어오는 처리 알고리즘 소프트웨어 등등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고 보면 된다. 센서가 데이터를 잘 처리해 명확히 인식하면 주변 환경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빨라지고, 그 결과 정확한 판단과 경로를 선택해 차가 움직이게 된다. 마치 카메라에서 해상도, 거리 측정 등 하드웨어 기술이 발달하면 데이터가 쌓이고, 이를 잘 처리하면 사람 눈(目) 수준까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자율주행차 연구는 결국 AI 연구다. AI 연구는 많은 데이터 축적과 이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 컴퓨터와 데이터를 통해 의미 있는 결과를 내는 딥러닝, 즉 처리 알고리즘 작업이 관건인데 이미 5~6년 전 퀀텀 점프를 했고 이에 따라 가장 큰 혜택을 보고 있는 게 자율주행 분야라 할 수 있다. 날씨, 조도, 외부 돌발 상황 등 예전에는 데이터로 처리하지 못했던 것들을 수백여 개 회사가 목숨 걸고 매달리다 보니 발전 수준이 놀랍다. 지금 같은 속도라면 향후 5년 내 미국 자율주행차들이 번잡한 도심까지는 아니어도 일반 주택가를 누비는 수준은 될 것 같다. 3년 전만 해도 이렇게 빠른 성장을 예상하지 못했다. 기술을 어떻게든 상용화해 삶의 질을 바꾸고 싶어 하는 실리콘밸리 개발자들의 에너지와 열정, 노력이 너무 치열하고 뜨거워 ‘무섭다’고 느껴질 정도다.”
자율주행 연구에 사활 거는 기업들
이 대목에서 그는 기술개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 개발자들은 목적이 ‘상용화’에 집중돼 있다. 한국 기업과 국가 모두 기술개발을 말하지만 수요자의 니즈(needs)보다 개발 자체에 방점이 찍힌 반면, 미국은 개발 단계에서부터 사용자 입장에서 사용 가치가 있는지, 상용화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에 집중한다. 제품 디자이너들이 처음부터 개입하는 것도 그런 문화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개발 속도나 활용이 빠르다.”
실리콘밸리의 투자 문화도 궁금하다. 흔히들 실패에 관대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절대 관대하지 않다. 피 같은 돈을 투자해 잃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리스트들만의 독특한 투자 문화가 있다. 10개 중 1~2개를 대박 쳐 만회하겠다는 전략이다. 투자했다가 손실을 보면 한국은 끝까지 본전 회수에 집착하는데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과감하게 포기한다. 어차피 자기 판단에 따라 투자를 결정했고 모두 다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몇 번 손실이 나더라도 다른 곳에서 대박을 치면 회수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실패한 사업을 물고 늘어질 필요가 없다. 이는 곧 투자받은 사람에게는 법적 책임이 없다는 얘기다. 이렇다 보니 실패를 경험 삼아 다시 사업 모델을 만든 뒤 다른 투자자를 찾는다. 실패에 관대하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재기의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시장 규모와 생태계 자체가 우리와 달라 바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요즘 한국 창업자들도 미국시장을 많이 두드리는데….
“나도 적극 권한다. 한국의 답답한 현실을 탓할 시간이 있으면 ‘해외로 나가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글로벌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한국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 중국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유럽이든 눈높이를 글로벌하게 맞추라고 간곡히 호소하고 싶다. 미국만 해도 이민 1~2세대는 세탁소, 슈퍼마켓 등을 운영해 자식들을 가르쳤다. 이 자녀들이 성공해 이제는 주류 사회에 안착한 경우가 많다. 아직도 미국은 한국인의 근면성실함을 인정하고 있다. 하루에 열 몇 시간 일할 수 있는 민족은 이스라엘과 한국뿐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 핏속에는 도전 DNA가 있지 않은가.”
그가 잠시 말을 끊더니 “다만 주의할 것이 있다”고 했다.
그게 뭔가.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다. 미국인들에게 먹혀야 한다는 얘기다. 국내 상당수 회사가 실리콘밸리 창업을 꿈꾸지만 비용 문제에 부딪히거나, 진입 장벽이 높다고 생각해 몇 년 해보고 안 되면 철수하겠다, 즉 ‘간만 보겠다’는 식으로 진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 거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한국에서 성공했다고 지사를 연다든지, 직원 한두 명 보내겠다는 생각으로 나갔다가는 철저히 망한다. 미국 소비자 눈높이에 맞춰 기술과 상품을 현지화하고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조언은 “우리가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들이 들어오게 하는 것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는 말로 이어졌다.
“보도가 많이 안 됐지만 최근 미국 인디애나, 앨라배마, 조지아 주지사가 기업 유치를 위해 연달아 한국을 방문했다. 세계에서 가장 잘산다는 나라의 주지사들이 이렇게 발품 팔며 뛰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한 나라에서 산업과 경제를 부흥시키려면 기업 혼자 힘만으로는 안 된다. 민·관·학이 함께 움직이는 총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우리 회사가 처음 미국 진출을 고민하고 있을 때 어디서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한 주정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세제나 부지 같은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직원의 자녀교육 등 입체적인 지원책을 펼쳐 보이면서 자기네 주로 오면 정말 잘해주겠다는 거였다. 주정부 내 대학들과 연계해 우리 기술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차세대 학문, 후속 세대 육성 방안까지 제시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아무리 밖에서 안이 더 잘 보이는 법이라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죽을힘을 다해 뛰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에너지를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지금 뭘 하고 있나 한탄이 절로 나왔다. 내친김에 중국이나 일본의 움직임은 어떤지도 물었다.
미국시장, 간보기 전략으로는 백전백패
미·중 무역분쟁 여파는 없나.
“그동안 중국 돈을 등에 업은 중국계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신기술을 서치하면서 기술 헌팅을 많이 했는데 무역분쟁 이후 줄었다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중국 투자자도 많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여파는 있는 것 같은데, 실리콘밸리에서는 전 세계 자본이 움직이니까 큰 임팩트는 없어 보였다.”
기자도 지난해 실리콘밸리를 두 차례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미·중 간 경제적, 인적 네트워크가 워낙 긴밀해 이걸 끊어내는 게 쉽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맞다. 중국은 이미 10년 전부터 놀라울 정도로 기술 습득을 많이 했다. 자율주행 기술만 해도 앞으로 중국이 먼저 발전할 것이라고 본다. 미국은 실리콘밸리와 타 지역의 격차가 크다. 반면, 중국은 신기술에 대한 규제가 허술하고 미국에서 건너간 트레이닝된 연구자들이 전역에서 일하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중국 10대 도시 모두 자율주행버스가 안 다니는 곳이 없다. 심지어 청소차량도 자율주행차다. 중국은 현재 국내에서 자체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을 이미 다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안면인식 분야만 해도 수천만 대의 폐쇄회로(CC)TV로 들어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최고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차량과 관련된 빅데이터도 중국이 훨씬 많다. 여기에 막대한 시장이 있고 정부까지 나서 총력 지원하고 있다. 인권 민감도도 덜해 미국은 시도조차 못 해보는 실험들이 과감하게 시도되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이 단기적으로는 중국을 흔들 수 있지만 시간이 미국 편이라고 절대 장담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전 세계 AI 특허와 논문의 절반이 중국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학회장에서 스탠퍼드대, 버클리대 교수들을 만나보면 중국의 기술 발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일본 움직임은 어떤가.
“한마디로 자기 나라보다 미국에 더 공을 들이는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실리콘밸리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지사도 많고 연구소도 많다. 도요타, 혼다, 닛산은 미국시장에선 주류다. 이들이 차만 파는 건 아니다. 도요타는 이미 우버를 포함해 실리콘밸리 기업에 4조 원을 투자하고 연구센터도 열었다. 자율주행은 물론, AI 로봇 연구에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1조 원을 투자해 MIT, 스탠퍼드대, 뉴미시건대와 공동 기술연구도 시작했다. 혼다도 실리콘밸리에 2조5000억 원을 투자했고 닛산 역시 대규모 투자센터를 갖고 있다. 이들이 왜 이렇게 하겠는가. 그만큼 미래를 보고 있다는 거다. 일본을 절대 얕봐선 안 된다. 우리의 경우 오로지 삼성만 실리콘밸리에 연구소를 규모 있게 운영하면서 현지 직원을 뽑고 있는 상황이다.”
실리콘밸리에 막대한 돈 쏟아붓는 日
2009년부터 서울대 지능형자동차IT연구센터장을 맡아 자율주행차 ‘스누버’를 개발, 운용하며 기술과 경험을 쌓은 서 교수는 ‘토르드라이브’를 창업하면서 자율주행 응용 분야로 ‘배달’을 선택했다. 기업이 대부분 승객 운송에 뛰어드는 상황에서 후발 주자로 물건 배송을 택한 것이다.
현재 ‘토르드라이브’의 기술력은 어느 수준인가.
“여의도를 비롯해 혼잡한 서울 도심을 3년간 6만km 무사고로 주행했다. 이달 중순부터 이마트와 함께 서울지역에서 자율주행 택배를 시작한다. 온라인으로 들어온 주문을 집까지 배달하는 것이다. 핸들에서 손을 떼고 지켜보는 안전운전자는 옆에 있지만 운전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자율주행 기술은 인간이 차량을 모두 제어하는 레벨 제로(0)부터 인간의 개입 없이 AI가 100% 운전하는 5까지 모두 6단계다. 레벨4(특정 지역이나 상황에서도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는 것)가 목표인데 현재 이 단계의 80%쯤 올라온 것 같다.”
마차를 대신한 기차의 등장이 3차 산업혁명이었듯, 운송 수단의 혁신이야말로 새로운 산업혁명의 동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자율주행차는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자동차와 AI, IT(정보기술)가 결합된 융복합 신산업이다. 서 교수 말대로 세계는 차세대 먹거리를 향해 사활을 걸고 뛰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조국 블랙홀’ 50일에 국정시계가 멈췄다. 언제까지 이래도 되는 것인가.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기사 원문 보기
서승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자율주행차를 가장 오래 연구해온 공학자로 통한다. 2015년 제자들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토르드라이브(ThorDrive)’를 창업해 기술자문을 해주고 있다. 그를 이달 초 서울대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동안 현대차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이번 승부수가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앱티브는 세계 최대 자동차부품 기업 미국 델파이가 기존 자율주행 관련 기업들을 인수합병해 세운 자율주행 전문 기업이다. 50 대 50 합작법인을 세운 것이니 기술 공유와 협력 사업이 동등하게 이뤄져 그동안 현대차에 부족했던 소프트웨어 역량이 강화되리라 믿는다. 충분히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현대차는 그동안 수소차 개발에 주력해왔다.
“수소냐 전기냐 하는 것은 동력에 관한 문제라 자율주행 기술과는 다르다. 하지만 기존 전기차 모델로는 장거리 주행이 어렵고 자율주행 레벨이 올라갈수록 전력 소모도 많기 때문에 수소 기술과 결합하면 당연히 시너지 효과가 있을 거라고 본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자율주행 분야에서 구글, GM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으로 도약할 거라는 전망도 하던데.
“워낙에 기존 강자가 많고 탄탄해 3위권은 큰 희망이고, 5~10위권에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매년 방학마다 실리콘밸리를 다녀오는 그인지라 실리콘밸리의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알 것 같아 지금 그곳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요즘 실리콘밸리의 화두는 뭔가.
“여전히 자율주행차를 중심으로 한 AI(인공지능) 빅데이터가 거센 흐름이고, 바이오 분야도 매우 활발하다.”
바이오? 우리는 죽을 쑤고 있는데.
“우리는 주로 신약 개발 쪽에 집중하지만, 바이오란 게 신약 말고도 질병 진단과 유전자 가위 등등 기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요즘엔 반려동물 쪽으로도 확대돼 질병 진단부터 항암제 연구까지 다양한 기술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그는 지난 여름방학에도 서울대 학생들과 함께 2주간 UC버클리 일대를 돌면서 이런 흐름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인 졸업생들이 만든 회사 두 곳을 소개하고 싶다. 하나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가진 벤처인데, 손상된 유전자 부위에 물질을 투입해 없애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질병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를 미리 제거하는 기술이다. 막 버클리대 박사학위를 받은 30대 후반의 한국인 청년들이 창업한 회사로, 실리콘밸리의 톱 브랜드 벤처캐피털로부터 거액을 투자받아 분위기가 매우 고무돼 있었다. 반려동물 항암치료 연구를 하는 한 벤처는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한국인 청년 두 명이 공동창업자였다. 직원이 10명인데 창업 1년 만에 실리콘밸리 내 동물병원 70여 곳과 계약을 맺어 암에 걸린 반려동물 치료는 물론, 항암제 연구도 하고 있었다. 라식수술에도 유전자가 활용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의사가 각막 두께만 보는 기계적인 판단만으로 무조건 수술을 했는데, 사실 라식수술 자체가 안 되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라식수술 적합 여부를 보는 유전자 진단 바이오 회사도 있었다.”
자율주행차 연구는 어떤가.
“미국 시가총액 상위 그룹들이 다 뛰고 있다고 보면 된다. 1등은 구글 웨이모로, 누적 마일 수가 가장 많다. 웨이모의 목표는 장기적으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술을 파는 것이다. 차량공유업체 우버와 리프트는 물론, 세계적인 물류업체 페덱스와 유피에스도 열심인데, 그들에게는 자율주행 기술을 이용해 인건비와 운전자의 피로도를 줄이겠다는 현실적인 목표가 있다. 이에 비해 애플, 인텔, 퀄컴 같은 반도체 기업들은 장래 펼쳐질 센서시장을 선점하고자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센서시장이라고 하면?
“자율주행에 들어가는 기본 기술이 센서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다 포함해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레이더나 카메라뿐 아니라, 하드웨어로부터 들어오는 처리 알고리즘 소프트웨어 등등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고 보면 된다. 센서가 데이터를 잘 처리해 명확히 인식하면 주변 환경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빨라지고, 그 결과 정확한 판단과 경로를 선택해 차가 움직이게 된다. 마치 카메라에서 해상도, 거리 측정 등 하드웨어 기술이 발달하면 데이터가 쌓이고, 이를 잘 처리하면 사람 눈(目) 수준까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자율주행차 연구는 결국 AI 연구다. AI 연구는 많은 데이터 축적과 이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 컴퓨터와 데이터를 통해 의미 있는 결과를 내는 딥러닝, 즉 처리 알고리즘 작업이 관건인데 이미 5~6년 전 퀀텀 점프를 했고 이에 따라 가장 큰 혜택을 보고 있는 게 자율주행 분야라 할 수 있다. 날씨, 조도, 외부 돌발 상황 등 예전에는 데이터로 처리하지 못했던 것들을 수백여 개 회사가 목숨 걸고 매달리다 보니 발전 수준이 놀랍다. 지금 같은 속도라면 향후 5년 내 미국 자율주행차들이 번잡한 도심까지는 아니어도 일반 주택가를 누비는 수준은 될 것 같다. 3년 전만 해도 이렇게 빠른 성장을 예상하지 못했다. 기술을 어떻게든 상용화해 삶의 질을 바꾸고 싶어 하는 실리콘밸리 개발자들의 에너지와 열정, 노력이 너무 치열하고 뜨거워 ‘무섭다’고 느껴질 정도다.”
자율주행 연구에 사활 거는 기업들
이 대목에서 그는 기술개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 개발자들은 목적이 ‘상용화’에 집중돼 있다. 한국 기업과 국가 모두 기술개발을 말하지만 수요자의 니즈(needs)보다 개발 자체에 방점이 찍힌 반면, 미국은 개발 단계에서부터 사용자 입장에서 사용 가치가 있는지, 상용화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에 집중한다. 제품 디자이너들이 처음부터 개입하는 것도 그런 문화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개발 속도나 활용이 빠르다.”
실리콘밸리의 투자 문화도 궁금하다. 흔히들 실패에 관대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절대 관대하지 않다. 피 같은 돈을 투자해 잃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리스트들만의 독특한 투자 문화가 있다. 10개 중 1~2개를 대박 쳐 만회하겠다는 전략이다. 투자했다가 손실을 보면 한국은 끝까지 본전 회수에 집착하는데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과감하게 포기한다. 어차피 자기 판단에 따라 투자를 결정했고 모두 다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몇 번 손실이 나더라도 다른 곳에서 대박을 치면 회수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실패한 사업을 물고 늘어질 필요가 없다. 이는 곧 투자받은 사람에게는 법적 책임이 없다는 얘기다. 이렇다 보니 실패를 경험 삼아 다시 사업 모델을 만든 뒤 다른 투자자를 찾는다. 실패에 관대하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재기의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시장 규모와 생태계 자체가 우리와 달라 바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요즘 한국 창업자들도 미국시장을 많이 두드리는데….
“나도 적극 권한다. 한국의 답답한 현실을 탓할 시간이 있으면 ‘해외로 나가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글로벌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한국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 중국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유럽이든 눈높이를 글로벌하게 맞추라고 간곡히 호소하고 싶다. 미국만 해도 이민 1~2세대는 세탁소, 슈퍼마켓 등을 운영해 자식들을 가르쳤다. 이 자녀들이 성공해 이제는 주류 사회에 안착한 경우가 많다. 아직도 미국은 한국인의 근면성실함을 인정하고 있다. 하루에 열 몇 시간 일할 수 있는 민족은 이스라엘과 한국뿐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 핏속에는 도전 DNA가 있지 않은가.”
그가 잠시 말을 끊더니 “다만 주의할 것이 있다”고 했다.
그게 뭔가.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다. 미국인들에게 먹혀야 한다는 얘기다. 국내 상당수 회사가 실리콘밸리 창업을 꿈꾸지만 비용 문제에 부딪히거나, 진입 장벽이 높다고 생각해 몇 년 해보고 안 되면 철수하겠다, 즉 ‘간만 보겠다’는 식으로 진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 거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한국에서 성공했다고 지사를 연다든지, 직원 한두 명 보내겠다는 생각으로 나갔다가는 철저히 망한다. 미국 소비자 눈높이에 맞춰 기술과 상품을 현지화하고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조언은 “우리가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들이 들어오게 하는 것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는 말로 이어졌다.
“보도가 많이 안 됐지만 최근 미국 인디애나, 앨라배마, 조지아 주지사가 기업 유치를 위해 연달아 한국을 방문했다. 세계에서 가장 잘산다는 나라의 주지사들이 이렇게 발품 팔며 뛰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한 나라에서 산업과 경제를 부흥시키려면 기업 혼자 힘만으로는 안 된다. 민·관·학이 함께 움직이는 총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우리 회사가 처음 미국 진출을 고민하고 있을 때 어디서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한 주정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세제나 부지 같은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직원의 자녀교육 등 입체적인 지원책을 펼쳐 보이면서 자기네 주로 오면 정말 잘해주겠다는 거였다. 주정부 내 대학들과 연계해 우리 기술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차세대 학문, 후속 세대 육성 방안까지 제시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아무리 밖에서 안이 더 잘 보이는 법이라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죽을힘을 다해 뛰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에너지를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지금 뭘 하고 있나 한탄이 절로 나왔다. 내친김에 중국이나 일본의 움직임은 어떤지도 물었다.
미국시장, 간보기 전략으로는 백전백패
미·중 무역분쟁 여파는 없나.
“그동안 중국 돈을 등에 업은 중국계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신기술을 서치하면서 기술 헌팅을 많이 했는데 무역분쟁 이후 줄었다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중국 투자자도 많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여파는 있는 것 같은데, 실리콘밸리에서는 전 세계 자본이 움직이니까 큰 임팩트는 없어 보였다.”
기자도 지난해 실리콘밸리를 두 차례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미·중 간 경제적, 인적 네트워크가 워낙 긴밀해 이걸 끊어내는 게 쉽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맞다. 중국은 이미 10년 전부터 놀라울 정도로 기술 습득을 많이 했다. 자율주행 기술만 해도 앞으로 중국이 먼저 발전할 것이라고 본다. 미국은 실리콘밸리와 타 지역의 격차가 크다. 반면, 중국은 신기술에 대한 규제가 허술하고 미국에서 건너간 트레이닝된 연구자들이 전역에서 일하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중국 10대 도시 모두 자율주행버스가 안 다니는 곳이 없다. 심지어 청소차량도 자율주행차다. 중국은 현재 국내에서 자체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을 이미 다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안면인식 분야만 해도 수천만 대의 폐쇄회로(CC)TV로 들어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최고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차량과 관련된 빅데이터도 중국이 훨씬 많다. 여기에 막대한 시장이 있고 정부까지 나서 총력 지원하고 있다. 인권 민감도도 덜해 미국은 시도조차 못 해보는 실험들이 과감하게 시도되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이 단기적으로는 중국을 흔들 수 있지만 시간이 미국 편이라고 절대 장담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전 세계 AI 특허와 논문의 절반이 중국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학회장에서 스탠퍼드대, 버클리대 교수들을 만나보면 중국의 기술 발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일본 움직임은 어떤가.
“한마디로 자기 나라보다 미국에 더 공을 들이는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실리콘밸리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지사도 많고 연구소도 많다. 도요타, 혼다, 닛산은 미국시장에선 주류다. 이들이 차만 파는 건 아니다. 도요타는 이미 우버를 포함해 실리콘밸리 기업에 4조 원을 투자하고 연구센터도 열었다. 자율주행은 물론, AI 로봇 연구에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1조 원을 투자해 MIT, 스탠퍼드대, 뉴미시건대와 공동 기술연구도 시작했다. 혼다도 실리콘밸리에 2조5000억 원을 투자했고 닛산 역시 대규모 투자센터를 갖고 있다. 이들이 왜 이렇게 하겠는가. 그만큼 미래를 보고 있다는 거다. 일본을 절대 얕봐선 안 된다. 우리의 경우 오로지 삼성만 실리콘밸리에 연구소를 규모 있게 운영하면서 현지 직원을 뽑고 있는 상황이다.”
실리콘밸리에 막대한 돈 쏟아붓는 日
2009년부터 서울대 지능형자동차IT연구센터장을 맡아 자율주행차 ‘스누버’를 개발, 운용하며 기술과 경험을 쌓은 서 교수는 ‘토르드라이브’를 창업하면서 자율주행 응용 분야로 ‘배달’을 선택했다. 기업이 대부분 승객 운송에 뛰어드는 상황에서 후발 주자로 물건 배송을 택한 것이다.
현재 ‘토르드라이브’의 기술력은 어느 수준인가.
“여의도를 비롯해 혼잡한 서울 도심을 3년간 6만km 무사고로 주행했다. 이달 중순부터 이마트와 함께 서울지역에서 자율주행 택배를 시작한다. 온라인으로 들어온 주문을 집까지 배달하는 것이다. 핸들에서 손을 떼고 지켜보는 안전운전자는 옆에 있지만 운전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자율주행 기술은 인간이 차량을 모두 제어하는 레벨 제로(0)부터 인간의 개입 없이 AI가 100% 운전하는 5까지 모두 6단계다. 레벨4(특정 지역이나 상황에서도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는 것)가 목표인데 현재 이 단계의 80%쯤 올라온 것 같다.”
>>기사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