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심병효 교수, “LTE 의존하는 반쪽짜리 5G… 28㎓ 투자하고, 쓸 기업 발굴해야”(조선비즈,2022.04.02)
국내 통신 전문가 3인은 5G를 개선해나가기 위해서는 통신사들의 적극적인 투자, 기업의 수요 발굴 노력,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파격적인 인센티브 등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진단했다.
2019년 4월 세계 최초로 한국이 5G를 상용 서비스한 지 3년을 맞아 지난 3월 30일 권경인 에릭슨엘지 최고기술책임자(CTO), 심병효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 등 각계 통신 전문가 3인을 각각 대면, 화상, 전화로 만나 인터뷰했다.
― 한국 5G 3년을 평가해본다면.
권경인 “우리나라 5G망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는 글로벌 컨설팅 기관인 ‘오픈시그널’의 조사를 봐도 나온다. 성능, 커버리지, 효용성 등에서 다른 국가 대비 모두 톱 수준이다. 물론 초기엔 커버리지 문제가 제기됐으나 최근에는 이마저도 해소되는 것 같다. 도심 지역, 실내에서 ‘5G 우선모드’로 써도 전혀 지장이 없다. 통신 3사가 최근 농어촌 공동망 구축을 통해 커버리지를 전국적으로 확대하려는 노력도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가 상용화한 5G는 기존 LTE망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비단독모드(NSA)다. 세계 최초 5G 조기 상용화를 위해 불가피했는데, 아직 NSA 모드 위주로 운용되고 있어 ‘순수 5G’라고도 볼 수 있는 SA 모드로 전환 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한국은 2018년 평창올림픽 때 28㎓(기가헤르츠) 대역으로 5G를 시연했었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5G 종주국’으로서 중요시했던 주파수다. 하지만 현재 3.5㎓ 대역의 중대역으로 전국망이 구축 중이지 않나. 이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심병효 “한국이 5G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해서 서비스가 어느 정도 안정된 것은 인정할 부분이다. 실제 다운로드 속도가 LTE에 비해 2~3배 빨라진 것은 사실이다. 다만 커버리지, 서비스 품질 유지를 위해 많은 기지국 설치가 필요한데, 통신사가 비즈니스, 비용 문제로 이를 주저하니 소비자 체감상으로는 품질이 안 좋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이다. 5G망에 대한 투자와 이를 통한 커버리지 확대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
최남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전국망을 구축했고, 가입자 수도 전체 절반 정도가 5G를 이용하고 있으니 공급 측면에서는 성공적이라고 평가된다. 아쉬운 점은 생태계다. LTE와의 차별점도 부족한 것 같다. 5G 상용화 초기에 많은 기업이 5G를 쓸 것이라고 기대했었지만, 실제 수요는 손에 꼽힐 만한 수준인 것 같다. 근본적인 문제는 통신사들이 기업용(B2B)으로 활용할 수 있는 28㎓ 대역 투자를 하지 않아서라고 본다. 물론 통신사가 투자를 안 하는 이유는 있다. 결국 생태계 부족이 문제다.”
권경인 “한국이 통신서비스 품질에 대해 기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LTE를 시작할 때도 품질이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었는데, 한국 소비자 만족도가 굉장히 낮았다. 오해도 있다. 소비자가 기대하는 20Gbps(기가비피에스, 1Gbps=1000Mbps) 속도는 5G에 대한 모든 기술이 구현됐을 때나 가능한 속도다(상용 서비스 초기 통신사가 5G 속도를 20Gbps로 마케팅). 또 우리가 상용 서비스한 5G는 LTE에 의존하는 NSA 모드다. 5G 신호가 좋으면 5G로 잡히고, LTE 신호가 좋으면 LTE로 잡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LTE가 잡힌다고 5G가 아니라는 건 잘못된 인식이다. 소비자들의 불편을 유발하고 있는 건 5G 우선모드 시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는 것인데, 이는 단말기 배터리 기술을 발전시켜야하는 부분이지, 5G 품질이 나빠서라는 것은 오해다.”
― 5G 기지국 수는 LTE 대비 20%에 그치고 있는데, 통신사들 투자에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닌가.
최남곤 “자본시장 관점에서 통신사가 투자에 소극적인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다. 그간 한국 통신기업은 공공적 성격이 강했고, 이는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선 큰 불만이었다. 5G 상용화 첫해였던 2019년 우리나라와 중국 통신주만 주가가 하락했다. 이런 평가절하 분위기가 2020년까지 이어지다가 2021년부터 통신사들이 투자를 줄이니 외국인들이 돌아오고 주가가 뛰기 시작했다.
구현모 대표 이후 KT가 주주 중심으로 경영을 본격화했고, SK텔레콤 역시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인수 이후 이런 기조가 노골화됐다. 과거 순수 통신사로서 통신에서의 성장 전략을 추구했던 LG유플러스조차 황현식 대표부터는 비통신 부문에서의 성장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3사가 공통적으로 지난해부터 배당성향을 높이고 배당을 현실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이는 미국이나 일본, 대만 등 우리보다 주주친화적이라 분류되는 국가의 통신사들이 과거 LTE 도입 때 보여줬던 모습이다. LTE 때는 시장의 메기 역할을 했던 LG유플러스가 있어 3사 경쟁이 치열했다. 이제는 모두가 (수조원의 돈을 쏟아부을 만큼) 경쟁 실익이 크지 않다고 보고 소극적 투자 기조로 일찌감치 돌아섰다. 최근 자본시장의 화두가 ‘기업가치 제고’이고 경영자들도 주가 기준으로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이런 분위기를 통신사가 자발적으로 뒤집기는 어렵다고 본다. 5G가 LTE보다 소비자 입장에서 월등하다는 단서가 없는 한 적극적인 투자를 하긴 어렵지 않겠나.”
권경인 “5G 기지국은 1개가 LTE 기지국 4~5개가 처리하는 걸 담당한다. 상대적으로 수만 가지고 비교하기 어렵다. 3.5㎓ 대역 기지국 수가 상당히 많이 설치됐다고도 볼 수 있다. 커버리지가 촘촘하기 때문에 SA로 진화하는 데도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KT가 지난해 7월부터 SA 모드를 운용하고 있고,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는 내부적으로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상당히 늦은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벌써 20개 통신사업자가 SA 상용화 중이다. 이는 커버리지 문제라기보다는 SA에 대한 요구, SA로 운영해야 될 필요성이 아직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 상용 서비스 중인 3.5㎓ 외에 28㎓ 주파수도 받았지만 기술적 난제를 들어 활용 노력이 더딘 것 같은데.
심병효“28㎓는 3.5㎓에 비해 경로 손실이 크고, 직진성(퍼지지 않고 레이저처럼 직진하는 성질)이 강한 주파수다. 직진성이 강하다는 건 사람이나 자동차처럼 움직이는 대상에 수신하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동차가 시속 100㎞로 달린다면, 전파는 수신 대상인 자동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 따라가야 한다. 스마트폰이나 자동차처럼 움직이는 수신기보다는, 상위망·기지국까지는 28㎓를, 기지국부터 움직이는 수신기까지는 3.5㎓로 전송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 동네까지는 고속도로로 빠르게 이동하고, 동네 안에선 일반도로로 움직이는 개념이다. 이렇게 하면 28㎓의 단점을 극복하면서 전체적인 망 속도도 향상시킬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이렇게 빠른 속도에 대한 요구가 있어야 통신사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권경인 “초창기부터 28㎓가 도달거리가 짧고 직진성이 강한 주파수 특성이 있다는 점은 알려졌던 사안이다. 그럼에도 상용화가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이 판단해 주파수를 할당한 것이다. 올해 1월 말에 에릭슨이 28㎓를 포함한 초고주파대역(㎜Wave·밀리미터파)에서 출시한 무선기가 10만대를 넘어섰다. 이는 테스트용이 아니고 이제 상용화할 수 있는 수준의 생태계가 구축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출시되는 스마트폰의 80% 이상이 밀리미터파를 지원한다. 우리나라도 이제 슬슬 적용해볼 만한 단계다. 밀리미터파는 기본적으로 초저지연에, 업로드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산업계에선 현장의 고성능 비디오를 받아 중앙에서 분석하기 때문에 이런 니즈가 있을 수 있다. 기술은 준비된 만큼 산업계의 수요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많은 기업이 뛰어들고 있는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나 증강현실(AR) 글래스 등이 5G 확산의 ‘킬러 콘텐츠(앱)’가 될 수 있을까.
권경인 “10년마다 이동통신의 세대가 바뀌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2030년(우리나라는 2028년) 6세대 이동통신(6G) 상용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때 각 기업이나 국가는 주요 비전을 세우는데, 여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는 게 ‘디지털 트윈’이라는 개념이다. 메타버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물리적 세상을 디지털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시뮬레이션해보고 물리적 세계를 더 좋은 사회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 하위에 지금 얘기되고 있는 AR 글래스나 혼합현실(XR)이 들어간다. 모든 산업이 이쪽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시기의 문제이지, 이 분야에서 킬러 앱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5G 비전을 만들 때는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만 사용했던 통신을 산업에 적용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야 전 세계적으로 생산성이 올라갈 수 있다고 봤다. 그게 늦어지고 있는 것이지만, 가야 할 길이라고 본다. 소비자 측면에서 보면, LTE 때 소비자들의 가입자당 평균 매출(ARPU)이 3만원가량이었는데 5G에서도 이게 늘어나지 않았다. 같은 돈으로 데이터 무제한에 더 빠른 속도로 유튜브를 맘껏 볼 수 있는 세상이란 것이다. 이게 현실적인 킬러 앱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최남곤 “가상현실(VR)의 경우 많은 데이터가 소요되고 초지연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기기를 이용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지 않나. 집에서 이용할 가능성이 큰데, 여기선 지금 망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킬러가 되긴 어려울 것이다. LTE 땐 아이폰이 나오고 앱 생태계가 생기면서 파괴적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지금 스마트폰으로 뭘 한다고 해서 5G와 엄청난 궁합을 만들어내긴 어려울 것이다. 기업용이 됐든, 완전히 다른 기기(디바이스)가 됐든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건 통신사의 문제는 아니고, 삼성전자나 애플, 테슬라 등이 풀어야 할 문제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리면 통신사는 알아서 투자할 것이다.”
심병효 “5G 확산을 가속화하려면 현실적으로 스마트팩토리를 키워야 할 것이다. 5G 확산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국내 노동력 부족, 고임금으로 베트남 등에 공장이 빠져나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스마트팩토리 기술을 해외로 수출할 수도 있다.”
―5G, 4년 차를 맞았다. 서비스 발전을 위해 마지막으로 제언한다면.
심병효 “산업적으로 5G 확산이 더딘 것은 누구의 책임이라기보단 생태계 문제다. 활용처가 있어야 통신사도 기지국을 확대하는 등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겠나. 망을 깔아도 5G를 쓰겠다는 기업이 없다면, 함부로 투자할 수 없다. 망 깔라고 정부가 통신사에 강제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생태계를 구축해 스스로 망을 확대할 니즈를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도 특화망(이음5G) 등을 통해 노력하고 있으나 민관 협력 촉진에 좀 더 나서야 한다. 물론 통신 3사가 소비자들의 서비스 품질 향상을 체감할 수 있도록 투자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최남곤 “정부는 5G 주파수 경매 대금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 통신사에 투자 압박만 할 게 아니라 투자할 수 있게 여러 인센티브로 지원해야 한다. 커버리지가 부족한 곳이 있다면, (지금 추진 중인 농어촌 공동망뿐 아니라) 특정 지역 기지국은 아예 제3자가 깔게 한 뒤 이를 3사 모두에 임대하는 식의 정책적 지원을 생각해볼 수 있다. 통신사로선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커버리지는 넓힐 수 있다. 5G 킬러 앱을 만들 수 있는 기금을 조성하는 식으로 기여해 볼 수도 있다.”
권경인 “5G 특장점인 초저지연을 적용해나가기 위해서는 SA로 빠르게 진화해 나가야 한다. 물론 일각에선 기지국도 부족한데 SA로 어떻게 넘어갈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커버리지가 걸림돌이라면, 미국 티모바일의 사례를 참고해볼 수 있다. 티모바일은 유일하게 2.5㎓ 중대역 주파수를 갖고 있던 스프린트와 합병하기로 하고, 5G 상용화 때는 저대역(600㎒)부터 확보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금은 중대역까지 커버리지를 넓히며 상대적으로 탄탄한 5G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도 LTE망으로 쓰던 저대역을 DSS(Dynamic Spectrum Sharing) 기술을 통해 얼마든지 5G로 변환해 쓸 수 있다. 정부가 허용한다면, 통신사는 커버리지 확장을 위해 이를 쓰려고 할 것이다. 커버리지가 확보되면 SA로 넘어갈 동력도 생기게 된다. 사업자뿐 아니라 정부도 저대역, 중대역, 고대역을 골고루 활용하는 전략 구상이 필요한 때다.”